제주 '야자수' 골칫덩이 전락

2017-05-14 18:00

제주 야자수가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하며 자태를 뽑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진순현 기자= 이국적 풍광을 자아내는 제주 ‘야자수’가 도로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4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제주시는 오는 6월까지 가령로 동부경찰서 주변 야자수 38그루를 제주시에 있는 모 군부대 야적지로 옮겨 심기로 했다. 시는 한국전력공사(KEPCO) 제주지역본부와 가로수로 심은 워싱턴야자수 이식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이식 비용 4700만원은 한전 제주본부가 부담한다.

가령로 일대는 야자수 높이가 10m를 넘어 특고압선과 얽혀있다. 때문에 접촉에 의한 정전, 안전사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는 해마다 700회에 걸쳐 야자수 가지치기를 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중간 부분을 자르면 야자수가 고사할 가능성이 크고 윗부분만 자르면 바람이 잦은 제주의 특성상 전선과 나무의 접촉을 막는데 큰 효과가 없다.

바람이 잦은 제주 지역은 강풍 때 야자수와 고압선과의 접촉으로 인한 정전이 한해 평균 1건 안팎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곧 수천 가구 가정의 피해로 이어진다.

실제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로 인해 야자수가 쓰러지며 전선을 건드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서귀포시 강정동과 하원동 1300가구를 비롯해 법환동 일대 각각 800여 세대가 정전되는 등 야자수로 인한 크고 작은 피해가 있었다.  차바에 쓰러졌던 야자수는 1990년대 도시개발 사업과정에서 가로수로 심어진 야자수로 25년 세월이 지난 현재 27m까지 자랐다. 

한전 관계자는 "가령로와 일부 지역에서는 야자수가 전선을 뒤덮어 전기를 아예 끊어놓고 다른 전선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주한림공원 관계자는 "생장점이 하나인 와싱턴야자수는 계속해 수직생장을 하며 특성상 나이를 먹을수록 뿌리가 위로 솟아올라(무게중심이 높아져) 강풍에 쉽게 쓰러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야자수들을 옮기는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시와 한전은 이번 시범 사업 효과가 좋으면 7개 도로변에 있는 야자수 230그루를 모두 이식할 계획이다. 또 앞으로 여론을 청취해 더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일각에선 야자수 이식 만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제주에 가로수로 심어진 야자수가 3594그루(제주시 1325그루, 서귀포시 2269그루)에 이른다. 모두 이식할 경우 막대한 예산이 들고 이국적인 풍경이 사라진다는 부정적인 면도 지적됐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 A씨는 “공항에 들어서자 마자 느끼는 게 커다란 야자수가 호위하는 이국적인 풍경 속에 서 있노라면 여기가 정말 대한민국 땅이 맞나 싶다. 그 점이 꼭 동남아시아 등 해외를 안가도 느낄수 있는 제주의 매력”이라며 “한전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이 먼저 아닌가요”하고 질문을 던졌다.

시민단체 관계자도 “관광지 일부구간 지중화 사업이 지속돼야 한다”며 “미관을 해치는 송전탑, 전봇대가 가장 흉물덩어리”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때 길조라 불렸던 까치도 정전 사고에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 해마다 봄이면 산란기를 맞은 까치가 전신주에 둥지를 틀어 정전사고에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28건, 올해는 현재 5건 등 해마다 20건 이상의 정전이 까치가 원인이다.

한전이 2012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까치집을 제거하는 데 쓴 돈은 16억8000만원, 철거한 둥지는 2만343개다. 올해도 2억1500만원을 들여 지금까지 2800여개를 철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