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학의 ‘공부에 관한 공부’] 훌륭한 공부의 조건, 이해와 확인
2017-04-12 09:45
이해와 확인의 의미부터 제대로 파악해보자. 우리가 뇌에 기억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해는 아는 것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아는 것을 ‘이해한 것’으로 착각한다.
'근대 조각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은 “작품을 만들기 전에 수도 없이 조각하고자 하는 대상을 그렸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자기의 작업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석고로 형을 뜨기 전에 작업하고자 하는 대상을 수도 없이 그렸다. 작업하는 내 손이 작업하고자 하는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들고자 하는 조각에 대한 입체적 사고는 뇌가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을 직접 만드는 것은 로댕의 손이다. 로댕은 머리가 아니라 작업할 손이 작업 대상을 제대로 이해한 상태인지 확인하기 위해 스케치를 반복했다. 작업할 손이 이해했는지 확인할 방법으로 로댕이 선택한 것은 스케치였다.
아는 것은 그저 뇌의 한구석에 기억 일부로 존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머릿속에 아는 것 하나가 늘어난 것은 기억의 수가 하나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꺼내 ‘생각이나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 이해이고, 이해의 수준에 이르러야 공부가 완성된다. 머릿속에 어떤 것을 기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컴퓨터에 파일로 존재하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해는 대상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며 언제든 생각과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다.
또한 아는 수준의 공부는 과학기술로 점점 대체되고 있다. 요즈음 이동할 목적지를 찾고 이동할 방법을 ‘아는 것’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에는 이것이 이동하는 행동을 위한 이해의 수준에 해당하는 공부였지만, 지금은 ‘아는’ 수준의 공부도 아니다. 그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정확한 지식과 정보에 연결함으로써 기존의 아는 것은 무색해진다.
결국 앞으로의 공부에서 수리, 논리, 언어 등 ‘아는 것’을 중심으로 한 좌뇌의 활용은 그 영역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의사의 아는 것’조차 미국 IBM의 왓슨과 같은 의학 분야 인공지능에 자리를 점차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해서 키워야 할 것은 우뇌가 가장 잘하는 ‘차이’와 ‘직관’이다. 차이는 ‘인간다움’, ‘감각’, ‘다름’과 같은 것에서 만들어진 가치다. 색을 예로 들면, 좌뇌는 파란색을 언어나 이미지의 상징으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실제 파란색 스펙트럼은 무한대의 색이다. 우뇌는 비슷해 보이는 파란색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아낸다. 사람의 언어에서 마음을 읽어내는 것과 같다.
직관은 이해가 커지면 다다를 수 있는데, ‘순식간에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직관으로 알게 된 것은 분석이나 논리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인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최고의 경지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어떤 이론이 직관적으로 떠올랐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에 이르렀는지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렇게 직관은 명증(明證)적이고 궁극적인 최고의 인식능력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직관이 자라기 위해서는 심오한 ‘이해’가 먼저 자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