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개혁] <4>국민 알권리 보장 위해 언론과의 소통 확대해야
2017-03-29 18:00
'불통' 아이콘 된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 기자회견 단 4번…연초 1년에 1번꼴
아주경제 주진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권 4년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불통이다.
박 전 대통령이 우리 헌정사에서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게 된 필연적인 이유는 독선과 불통의 국정운영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관과 정책은 ‘통제’와 ‘보안’으로 점철됐고, 국민의 알 권리는 철저히 무시됐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 중 하나가 언론자유 침해인 것도 이를 방증한다.
청와대가 명실상부한 국정 운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 생활과 국가 운영에 직결되는 정책을 누가 어떻게 조율하는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대 언론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론과의 소통은 곧 국민과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는 아예 취재를 위한 기자들의 접근조차 어려웠다. 대변인의 브리핑도 일방통행식으로 이뤄졌고, 발표 사안 외에는 거의 답변하지 않았다. 청와대 홍보라인은 발표사안 외의 기사가 나가는 것을 싫어했던 박 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급급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언론브리핑만 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고, 공식 행사장에서 참모들이 기자들의 접근을 통제하는 일도 잦았다.
취임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단 4회로, 매년 연초 신년 회견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매번 질문자와 질문 분야를 청와대에 사전 전달하고, 박 대통령은 준비된 답변 외에는 절대 질문을 받지 않았으며, 결국 ‘하고 싶은 말’만 남기고 퇴장했다. 재임 기간 이뤄진 7차례의 대국민담화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그때도 대략적인 질문지를 청와대에 넘겼지만 그대로 하진 않았다. 추가로 물고 늘어져야 할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게 있었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자들과 열띤 토론을 즐겼을 정도로 언론과의 소통을 중시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에 비하면 지난 4년여 동안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출입한 기자들은 답답함을 넘어 무기력증을 호소할 정도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동을 기자들에게 상시 개방했다. 기자들은 비서실장, 수석 등 실세들을 매일 만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전 11시~낮 12시, 오후 4~5시 하루 두 차례만 비서동 출입을 허용했지만 비교적 정보 접근이 자유로운 환경이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언론과의 직접 소통을 가장 중요시한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임기 내내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기조로 삼았으면서도 양적으로는 접촉면을 크게 넓혔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청와대 기자실을 개방했고, 출입기자들과 산행도 자주 즐겼다. 잘 풀리지 않는 정국 현안이 생기면 불과 몇 시간 전에 통보한 뒤 춘추관에 들러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 정보공개를 제도화하고 언론을 통하지 않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채널을 구축해 활용했다. 대변인과 홍보수석이 매일 오후 1시 30분에 정례적으로 하는 기자브리핑을 청와대와 KTV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했다. 국민은 대변인과 기자들 간 치열한 질의응답이 오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새롭고 신선한 소통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한 보수언론에만 친화적이었으며, 낙하산 사장 논란과 언론 통제 의혹을 낳았고 노조 파업과 언론인 해직 사태를 빚었다. 청와대 참모진은 실명이 아닌 핵심관계자라는 익명 뒤에 숨어 언론플레이를 했고, 당시 이동관 홍보수석의 ‘마사지'(대통령 발언 등을 유리하게 각색, 왜곡) 발언은 이명박 정부 대 언론관의 상징이 됐다.
국정운영을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론직필해야 할 출입기자단과 기자단의 카르텔을 과감하게 혁파해야 한다는 지적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