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국내 공연장 투명성·공정성 제고돼야

2017-03-17 06:24
박현준 한강오페라단장

박현준 한강오페라단장[사진=아주경제 DB]



박현준 한강오페라단장

혼돈의 시기다. 가치관이 무너지고 거짓말이 난무한다. 도덕이 실종되고 법 집행기관이 우롱당해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부끄러운 현실 속에서 미래 세대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얼룩졌던 공연계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양한 공연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찾아가는 연주회 방방곡곡, 오페라 파크 콘서트, 해외 연주 등 많은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이를 집행하고 심사하는 기관이 문체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와 한국문화예술회관 연합회(한문연) 두 군데다. 문예위는 과거 문예진흥원의 맥을 이어 가고 있고, 한문연은 지방 문화 발전을 위해 건립된 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한 연합회로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두 기관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공연 예산을 심사하고 배분한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예술가들의 한 해 농사가 이 두 기관의 심사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 두 기관의 심사위원 선정·지원 단체 선정·예산 분배 등은 공정한지, 밀실에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그 결과는 누가 검토하고 감사하는지 등에 대해서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한문연의 다른 문제는 문화 소외 지역 및 전국에 많은 공연을 지원해서 국민들에게 공연을 접하게 하겠다는 좋은 의도와 달리 그 지원 프로그램이 매년 일회성으로 그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롭게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책을 세우고 콘텐츠를 개발해 장기적인 문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서울 예술의전당에 예산을 배분해 음악가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경제적인 걱정 없이 크고 작은 공연을 끊임없이 만들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밖의 지방 공연장들도 예산이 정책적으로 지원된다면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단체를 지원할 때는 공연 규모와 수준·확장성 등 미래성을 봐야 하고, 디테일한 전문가들의 판단에 의해 심사하고 결정돼야 한다. 문체부 지원 사업을 위해 정치권 등에 로비를 하는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술의전당은 음악가들의 터전이다. 많은 음악가들과 단체들이 이곳에서 공연하길 원한다. 그러다 보니 대관 경쟁률이 치열하고 높다. 하지만 예술의전당 심사규정은 20년 전과 다름없이 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콘서트홀의 대관 날짜를 장르별로 나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한 심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최근 행보 역시 답답하기 짝이 없다. 4월 예정된 ‘외투&팔리아치’, ‘보리스 고두노프’와 6월에 있을 ‘진주 조개잡이’ 공연에는 지휘자, 연출자, 성악가 모두 외국인 일색이다. 우리나라의 국립오페라단이 맞는지, 외국 단체 초청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콘텐츠 개발 자체를 안 하나?' 싶을 정도다. 국립오페라단의 미래가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학민 단장이 무슨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외국인 연출자와 지휘자에게 공연을 맡기는 것은 가장 손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이 우리 국립 오페라의 현주소다.

김 단장은 "국립오페라 편당 제작비가 10억원"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지만, 같은 작품을 다른 제작자에게 맡기면 제작비가 5억원으로 줄 수 있다. 1년에 10편가량 제작되는 국립오페라단 제작비를 수십억원 절감해 차라리 아카데미 설립과 오페라 가수 인재 양성에 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