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미국이 달라이라마를 언급하는 이유
2017-02-15 13:40
칼럼니스트(문학박사)
90년대 롱아일랜드의 목가적 저택에 살았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거짓말처럼 미국 대통령이 됐다. 모 방송에서 상영되고 있는 미국의 노동역사 관련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트럼프는 요즘 그가 하는 행태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래도 의식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미국의 보수층 상징과도 같은 총을 찬 카우보이를 상상하듯이 '말'은 참으로 다루기 힘든 존재인 듯하다. 시의적절하게 말을 잘하는 것도 어렵지만, 승마로 '말'이 많아져 탄핵정국까지 맞이한 게 아닐까?
트럼프 행정부의 첫 국무장관으로 임명됐던 렉스 틸러슨은 국회 인준 과정에서 달라이라마와 회동을 시사했다. 이미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트럼프 정부의 국무장관은 엑손모빌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그냥 말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만문제, 남중국해 갈등 등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보여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외교'로, 실제로 이들 모두는 정치·경제의 달인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일 따름이다.
미국을 비롯해 외교에 능한 나라는 당근과 채찍을 잘 쓰는 나라다.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을 말하고, 신임장관은 "달라이라마와 회동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중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의 역할지위를 다르게 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롤플레이'일 따름이다. 또 이런 뻔한 놀음을 아는 중국은 항상 '화난 것'처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미국이 잊혀질 때 즈음이면 달라이라마를 언급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양 정부의 패러다임 차이도 있다. 중국에게는 '달라이라마=티베트'이지만, 미국에 있어서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문제는 별개다. 지금 중국 치하에 있는 티베트자치주는 '중국'이지만, 달라이라마는 티베트망명정부를 그만두고 그냥 영적인 지도자로 남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일 따름이다.
올해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덜 추운 것은 티베트 지역에 중심을 둔 따뜻한 고기압이 지난 가을 이후 중국과 한반도를 계속 덮으면서 마치 방파제처럼 찬 공기를 막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0년 10월 7일 중국 인민해방군은 티베트에 진주했다. 어린 달라이라마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 여념이 없던 국제사회는 티베트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