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장칼럼] 김정남 피살 배경과 의미에 대한 잠정적 평가

2017-02-14 22:31
김정은의 승인이나 동의없이는 불가능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13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여성 2명에게서 독침을 맞아 피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교부에서는 아직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15일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직접적인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로서 김정남의 암살에 최근 국내의 한 언론(주간경향)이 2012년 김정남 망명 시도를 구체적으로 보도한 것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김정남 망명 시도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 같은 보도를 보고 김정은이 격분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김정남의 피살에는 북한의 정찰총국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북한 정찰총국이 김정남 감시를 맡아왔고 정찰총국은 요인 암살에 관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여배우 성혜림 사이에서 1971년에 태어났다. 김정일이 이미 결혼해서 딸까지 두고 있었던 성혜림을 강제 이혼시키고 그와 동거하면서 김정남이 태어났기 때문에 김정일은 김정남을 김일성이나 북한의 간부들에게 자신의 아들이라고 내세울 수 없었다. 김정남은 결국 김정일의 숨겨진 아들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에 김정남이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은 김정일이 그를 국제 감각이 있는 지도자로 키우고자 하는 의도에서 결정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김정남이 바깥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상태에서 단 한명의 친구도 없이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그의 외할머니가 김정남을 정규교육에 넣기 위해 김정일의 반대를 무릅쓰고 겨우 설득해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김정남은 제네바 체류 1년 반 만에 당시 주 제네바 북한 공사가 남한의 납치 가능성을 집요하게 제기해 모스크바의 프랑스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 후 1985년 3월 소련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자 ‘너절한 달러 거지’ 소련보다는 차라리 ‘도덕률이 높은 중립국’ 스위스가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김정남은 다시 제네바 국제학교로 편입하게 되었다.

사춘기의 김정남이 밤에 바(bar)에 나가기 시작하자 겁을 먹은 성혜림의 어머니가 김정남을 평양으로 데리고 들어감으로써 10대 후반의 나이에 김정남의 유학생활은 끝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김정남이 제네바대학에 진학해서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일부 주장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