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심' 강하늘 "'약촌오거리' 최 군, 감히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2017-02-13 15:37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재심’(감독 김태윤·제작 이디오플랜·제공 배급 오퍼스픽쳐스)은 실제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소재로 벼랑 끝에 몰린 변호사 준영(정우 분)과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현우(강하늘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배우 강하늘(28)은 살인 누명을 쓰고 10여 년을 감옥살이 한 현우 역을 맡았다. 평소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호기심과 욕심에 사로잡혔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거나 감정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는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선택했고, 제가 즐길 수 있다면 남들도 그럴 거로 생각했죠. 어떤 사명감으로 작품에 임하기보다는 ‘재심’ 개봉으로 인해, 대중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현우 캐릭터에 관해 제가 지양하고 싶었던 건 ‘순박한 아이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인식이었어요.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죠. 껄렁껄렁하지만 평범한 말 그대로 ‘누명’을 써도 도망칠 수 없는 비주얼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유행했던 염색이나 옷을 입었죠. 문신도 제가 건의 드린 부분이었어요. 겉멋이 든 아이를 보여주고 싶어서요.”
과거 신을 찍을 당시 머리가 짧았기 때문에 가발을 착용했다고 덧붙인다. ‘좋아해줘’부터, 드라마 ‘보보경심’까지 가발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네자 그는 고개를 젖히고 마구 웃는다.
천진하게 노하우를 늘어놓다가도 작품에 관한 질문을 던질 때면 순식간에 진지한 얼굴로 돌변한다. 영화 ‘재심’에 관한, 현우라는 캐릭터에 관한 고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심스럽게 “실제로 최 군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아내님과 아이들도 만나봤다”고 답한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려고 했어요. 사건이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죠. 그분을 실제로 만나고 나니 ‘내가 어떻게 그 10년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알겠느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시나리오 안의 캐릭터만 이해하려고 했어요. 감히 그분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형님과 술 한잔하고 아이들이랑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반대의 입장은 어땠을까? 피해자 최 군은 오히려 이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자신을 연기할 강하늘이 어떤 마음일지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을 것 같다고 잘 찍어달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 말을 회피해버렸어요. 마음이, 기분이 이상해져서요.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어요. 형님이 촬영 현장에 놀러 오셨는데 하필 그 날이 현우가 ‘내가 진짜 범인이 아닐까?’ 고민하고, 상상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신이었어요. 피 칠갑을 하고 있는데 도저히 이 꼴로는 형님께 인사를 드릴 수 없겠더라고요. 일부러 다 씻고 깔끔한 모습으로 인사드렸죠. 괜히 자칫, 제가 형님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걱정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는 회피하게 된 것 같아요.”
실제 피해자가 겪은 10년이라는 긴 시간과 고통, 두려움은 감히 이해하려야 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늘은 더욱이 영화와 실제 사건을 분리하려고 노력했다.
“제가 이 영화를 사명감 혹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접근했다면 어떤 의미에서 많은 실수를 만들었을 거예요. 욕심을 내서 ‘이 부분을 더 강조해야지!’, ‘더 보여줘야지!’라고 하면 할수록 인물과 멀어지죠.”
영화 속 아픈 분위기와는 달리 현장은 유쾌했다. 유난히 구타당하는 신이 많았던 강하늘이지만 “워낙 친한 사이라 맞으면서도 재밌었다”고 눙치곤 했다.
“현장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다들 친한 사이니까요. 다들 장난도 치고, 유쾌한 분위기를 끌고 갈 수 있었죠. 저 역시도 ‘현장에선 무조건 즐기자’는 주의라서, 찍을 땐 다들 어려움 없이 찍었던 것 같아요.”
영화 ‘동주’ 이후 한 걸음 더 성장한 듯했다. “워낙 마음고생이 심했던” 영화 ‘동주’ 이후, 그는 조금씩 캐릭터와 자신을 분리하게 되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더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저, 강하늘이라는 사람이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감정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즐기고 그러면서도 집중력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요. 어떤 면으로는 인간적인 성장을 거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해, 강하늘의 화두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폭넓은 의미로 그는 성장을 거두고 있고 연기적으로 또 인간적인 면모들로 차근차근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올해 저의 화두는 ‘지금을 살자’는 거예요. 제 최대의 관심사죠. 한동안 되게 힘들었었거든요. 이걸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명상을 시작하게 됐어요. 어떤 책을 읽었는데 ‘과거는 거짓말이고, 미래는 환상이다’라는 글귀를 읽었어요. 그 한 문장이 제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어요. 과거도 미래도 힘을 끼칠 수 없다고 하는 것. 그 얘기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잘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