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 킹' 한재림 감독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7-02-02 07:00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제작 우주필름·배급 NEW)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조인성 분)가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 분)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 개봉 전부터 무당이니 부패 검사니 현실과 똑 닮은 상황으로 화제를 모아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더더욱 기가 막혔다. 현실과 똑 닮은 데칼코마니였던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추측처럼 “한재림 감독이 다 알고” 이야기를 쓴 것일 수도 있고, 한 감독의 ‘재림’을 간절히 바란 팬들의 기도에 온 우주가 나서서 도운 것일 수도 있다. “단순히 픽션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멋쩍을 정도로 현실과 똑 닮은 이 작품은 그래서 더 웃기고, 그래서 더 슬프기만 하다.
“합리적 추론이자 영화적 상상이었다”는 한 감독의 말대로 ‘더 킹’은 상업영화로서의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서사 구조 역시 흥미롭고 탄탄하다. 이 안에 재미 요소처럼 풍자와 해학을 더했을 뿐인데 “웃기려 한 것이 다큐멘터리가 돼버려” 당혹스러운 건 오히려 한재림(42) 감독이었다. 그가 벌인 합리적 추론과 과정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 영화적 상상이었는데 이렇게 돼버렸다. 사실 쓰면서도 ‘이렇게까지 할까?’ 생각했다. 웃기려고 했는데 다큐멘터리가 돼버렸다. 제가 상상한 것이 진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졌다.
우연이라고 했지만, 취재 과정에서 비슷한 면면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고
-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봐온 정치 검찰들의 면면을 뭉뚱그린 거다. 이미 우리가 봐온 그들의 행적을 기조로 구성한 것이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만든 거라고 보면 된다.
- 허구를 바라보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다큐멘터리가 돼버렸으니. 하하하. 영화를 태수의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리얼하지 않다. ‘내부자들’ 같은 부류의 영화가 아니다. 권력자들이 어떻게 이 나라를 지배했고 살아남았는지 지켜보고 생각하는 영화다.
영화의 첫 시작이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고 들었다. 영화의 시작이나 흐름을 보면 감독님의 정치적 성향이 많이 깃들지 않았을까
- 저는 옳고, 그른 것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일반 사람들은 조금 실수를 해도 1~2년 정도 감옥에 가는데 몇백 억을 훔친 이들은 집행유예를 받지 않나. 그들이 누리는 권력과 신념, 정의 같은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영화를 보는 이들 모두 한 마음일 거로 생각한다
- 거의 그런 마음일 거다. 진보와 보수는 정치적으로 공존해야 한다. 계속 경쟁하고 건전한 토론과 논쟁을 벌여야 한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옳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정치 성향을 떠나 모두가 한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사실 ‘더 킹’을 보기 전에는 타깃층이 한정적이겠다고 짐작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많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저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세대가 공감할 거로 생각한다. 만듦새는 경쾌하고 가볍기 때문에 젊은 분들도 재밌게 볼 수 있고 중년은 자신이 겪어온 시간을 돌아볼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를 느낄 것 같다.
권력을 말하는 만큼 영화가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다
- 한 주인공이 권력으로 다가가는 이야기니 화려하고, 동경하고 싶은 분위기로 만들고 싶었다. 또 형식적인 면에서는 내레이션을 쓰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빠르고 재밌어야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내레이션 부분도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 말씀하신 대로 자칫하면 설명조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
- 그래서 내레이션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많이 넣었다. 감정에 따라 고등학생부터 20대, 30대까지 느껴질 수 있도록.
영화 초반에는 만화 같은 분위기는 점차 현실적인 뉘앙스와 이야기를 담게 된다. 흐름을 조율하는 것도 감독의 몫이었을 텐데
- 태수의 과거는 관객과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는 리얼하지만 한 신, 한 신을 살폈을 때는 만화적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그가 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하고 리드미컬하게 가져가려고 했다.
영화 속 노래들도 인상 깊었다. 클론이나 자자 같은 90년대 인기 가수들의 곡들
- 시나리오를 쓰던 때였는데 한 번은 고위 관계자들과 노래방을 간 적이 있었다. 가곡 같은 걸 부르실 줄 알았는데 싸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더라.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화에 조금 놀라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베토벤 교향곡이나 다양한 클래식을 배치했다
- 베토벤 교향곡 7악장은 꼭 쓰고 싶었다. 사실 비발디를 넣을까 고민했는데 무게감 있는 베토벤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제가 좋아하는 곡들은 너무 비싸서 최대한 음악 감독인 모그 형과 비슷한 느낌을 찾으려고 했다.
한강식의 첫 등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관상’의 수양대군이 그랬던 것처럼 두고두고 회자할 강렬한 등장이었다
- 수양대군은 등장 자체가 포인트였다면 한강식은 멋있게 나타나 자자 노래를 부르는 모습까지가 ‘등장신’이다. 탁! 깨는 순간까지. 하하하. 남에게 설교하는 꼰대가 마이크를 들고 댄스 음악을 부른다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 신 전체가 한강식을 위한 등장신인 셈이다.
최두일의 캐릭터 역시 인상 깊었다. 누아르적인 면을 가진 인물인데 남자들의 로망 그 자체 같았다
- 저는 두일이 태수의 이면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들개파의 보스는 한강식인 셈이다. 비주얼적인 힘으로 정치 검찰의 구체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두일과 태수는 순수한 욕망을 그리고자 했다. 두일은 비극을 맞지만 태수는 비극을 피하고자 또 다른 반격을 준비한다.
사실 두일 역에 더 화려하고 매끄러운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쓸 수도 있었는데, 연기파인 류준열을 캐스팅했다
- 잘생긴 배우를 썼다면 이런 느낌이 안 났겠지. 화려한 맛도 있겠지만 (류)준열이는 담담하고 감성적인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성본능도 일어나면서 묵묵한 느낌이랄까. 화려하고 돋보였다면 그저 그런 조폭 영화로 왜곡됐을 것 같다.
감독님의 여성관도 궁금하다. 상희나 안희연 검사를 보면 여느 남성 캐릭터보다 강한 성격이 돋보이다가도 연예인으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보면 팍 식어버린다
- 남성과 여성이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 성별이 아닌 그들의 성격을 그리고자 한 거다. 이주연 씨의 경우는 태수가 비디오를 보고 권력에 대한 유혹을 받는 모습을 그리려고 한 거다. 권력에 대한 고민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거다. 말초적인 노출은 피했다. 김소진 씨가 연기한 안희연 검사는 권력을 가진 남자들을 박살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 같다.
정말 세더라
- 속이 후련했다. 하하하. 정말로 다 박살 내줘서 통쾌했다. 사실 안희연 검사는 모델이 있다. 임은정 검사라고 유명한 분이시다. 몇몇 기사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서 취재차 연락을 드렸는데 잘 안 됐다. 그분을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고 아무래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취재를 한 건 아니지만, 기사들을 찾아보면서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게 된 것 같다.
엔딩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았다
- 투표 독려 영화라고 하는데 그런 의도는 아니다. 촛불도 좋고, 투표도 좋고 꾸준히 사회적 관심을 가져달라는 이야기다. 나쁜 곳에 다녀온 인물이 ‘사실은 별거 아냐.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건 당신들이야’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게 투표일 수도 있는 거고 촛불일 수도 있는 거다. 생각해 볼 만한 거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