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 작품에 무슨 코미디가 있는 거죠?”

배우 유해진은 진중하다. 영화 ‘왕의 남자’와 ‘타짜’를 지나, ‘럭키’에 이르기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웃기게 연기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반문한다. 그 숱한 작품 중 “대놓고 코미디인 작품이 있었느냐”고. 이는 작품을 대하는 유해진의 태도이자 그가 추구하는 웃음 코드이기도 하다.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면 그래요. 상황에서 생겨나는 재미는 있지만 대놓고 코미디였던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영화인 ‘공조’도 그렇죠. 관객들이 계속 무겁게 볼 수는 없으니까 군데군데 흐릿하게나마 웃음 코드를 심어놓았지만, 이 인물이 코믹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게 ‘공조’의 포인트는 아니었던 거죠.”

1월 18일 개봉하는 영화 ‘공조’(감독 김성훈·제작 ㈜JK필름·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남한으로 숨어든 북한 범죄 조직을 잡기 위해 특수부대 북한 형사 림철령(현빈 분)과 생계형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 분)가 남북 최초 공조수사를 벌이는 예측 불가 팀플레이를 담은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유해진은 거창한 포부나 명예보다는 아내의 돈 걱정을 덜어주고 사랑스러운 딸에게 스마트폰을 안겨주고 싶은 소박한 가장, 강진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포인트를 준 건 철령과의 밸런스겠죠.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사람과 대조되어야 밸런스가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 걸 철령은 가지고 있고, 그가 가지지 못한 걸 제가 가지고 있는 식으로요. 그 친구가 액션이라면 저는 드라마겠죠?”

유해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철령이었다. 그는 철령과의 밸런스 그리고 소통에 집중하고자 했다. 영화의 말미, 사건을 해결한 두 사람이 부둣가에 남는 장면은 작품 선택에 있어 결정적 한 방인 셈이었다.

“부둣가 신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어렵게 되찾은 동판을 던져버리고 그 자리엔 너와 내가 남게 되잖아요. 공교롭게도 칼침은 맞은 진태와 총상을 입은 철령이 같은 자리에 부상일 입었더라고요. 같은 곳이 아픈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드라마로서 남과 북을 떠나서 너와 내가 남는다는 것, 그게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유해진이 추구하는 연기적 색깔과 코미디의 결과 닮아있다. “박장대소 보다는 흐뭇한 미소”를 추구하는 유해진에게 영화 ‘공조’의 이야기를 빌어 “추구하는 연기 및 세계”를 물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강요하지 않는 것이에요. 강요하지 않되 슬쩍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를 좋아하죠. 억지로 떠먹여 주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연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요. 코미디 적인 부분도 그렇죠. 박장대소보다는 흐뭇한 미소가 흐르는 것을 좋아해요. ‘럭키’나 ‘공조’도 마찬가지예요. 슬쩍 웃을 수 있고, 전체적으로 스며들 수 있는 것. 따듯함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것. 그게 제가 추구하는 연기이자 좋아하는 장르에요.”
영화 ‘공조’에서 가장 따듯하고, 잔잔한 웃음을 선물한 것은 아마 진태와 그의 가족들 아니었을까? 유해진은 극 중 아내인 장영남과 처제인 윤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그들과의 촬영에 “웃음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전했다.

“장영남 씨의 경우는 같은 서울예대 출신이라서 친분이 있었죠. ‘극비수사’도 함께 했었고요. 동네도 같아서 드문드문 마주치곤 해요. 현장에서 보면 어찌나 반가운지…. 극 중 집 촬영만 있으면 주변에서 ‘벌써 표정이 바뀌었다’고들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행복해한다고요. 영남 씨와는 호흡이 정말 잘 맞아요. 함께 장면을 만들어가고 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편해요. 이런 게 시너지라고 할까요? 연기하면서 정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평소 진중하게 작품에 임하는 유해진은 본인의 캐릭터, 상대의 캐릭터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든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함께 장면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유해진은 장영남과의 호흡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다.

“(현)빈이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멋있는 친구죠. 진중하게 작품에 임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태도가 인상 깊었어요.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걱정이 될 정도더라고요. 제가 알잖아요. 그런 피로나 부상이 누적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래서 ‘좀 살살하라’고 말리기도 했어요. 총격 액션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더 왕성하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유해진은 촬영 전 현빈과의 술자리를 회상했다. 멋쩍게 다가온 현빈이 “술 한 잔 사달라”고 말하는 순간,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훨씬 더 가깝고 편안한 사이가 될 것”임을 단박에 짐작했다. 먼저 술자리를 제안한 현빈에 대한 고마움을 지나, 술잔을 기울일수록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의 ‘과정’은, 영화 속 림철령과 강진태로 완성된 셈이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빈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스위스에서 찍은 사진을 제게 선물했어요. 공통된 취미가 있어서 금방 친해졌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술을 어찌나 먹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하하하.”
흔히들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한다. 유해진의 필모그래피가 그렇듯,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은 그의 작품인 캐릭터 속에 그대로 묻어나곤 했다. 그 매력은 차곡차곡 쌓여 오늘날의 호감과 흥행으로 이어졌다. 영화 ‘럭키’가 바로

이는 오늘날 유해진에 대한 대중의 호감과 영화의 흥행까지 이어졌다. 영화 ‘럭키’가 바로 그 증거인 셈.

“가까운 사람들과 그런 이야길 했어요. 솔직히 여러분들이 밀어주시는 것 같다고요. 제가 그걸 느끼거든요. 저는 복이 정말 많아요. 겸손해지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요. 열심히 하는 모습에 ‘쟤 한 번 밀어줄까?’하고 많이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죠.”

유해진은 재차 대중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며, ‘럭키’의 흥행에 대한 기쁨을 지워가겠다고 덧붙였다. “‘럭키’는 그저 ‘럭키’인 것”이라면서.

“말 그대로 행운이잖아요. 자꾸 기대할 수는 없으니 슬슬 잊어야죠. 좋았던 추억으로 한구석에 밀어 넣으려고요. 부담감을 가지고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요. 부담은 되지만 그것도 점차 자연스러워지겠죠? 물이 슬슬 빠지길 바라요. 모든 면에서, 천천히 해지길 바라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