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중국 '북녘서울' 베이징 vs '남녘서울' 난징

2017-02-01 07:00
'메마른 땅의 수도' 베이징…대륙의 700년간 명실상부 수도
'풍요의 땅 古都' 난징을 수도로 한 왕조나 정권은 요절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서울의 28배 면적…수도 베이징

오늘날 베이징(北京)과 난징(南京)은 서울 경(京)자를 쓰는 중국의 유이무삼(有二無三)한 도시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서울이나 워싱턴처럼 특별시가 아니다. 상하이·텐진·충칭과 더불어 4개 직할시 중의 하나다. 베이징은 특별하지 않다. 직할시 중의 '원오브뎀'(one of them)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타 지역에서 베이징으로 갈 때 ‘상경’(上京)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중국에는 서울과 지방, 즉 ‘경향’(京鄕)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베이징은 강이 없어 메마른데다가 봄이면 서북쪽의 사막과 황토고원에서 몰아치는 황사의 습격으로 백주(白晝)대낮이 아니라 ‘황주’(黃晝)대낮이 된다. 또한 북쪽으로 불과 60㎞ 떨어진 만리장성 너머 이민족의 침입 가능성을 자나 깨나 잊으면 안 되었기에 살벌한 느낌마저 든다.

베이징의 면적은 1만6808㎢로 서울 면적의 약 28배, 즉 서울과 경기도, 충청북도를 다 합한 넓이 정도다. BTV (베이징 TV)는 베이징을 여러 개 지역으로 구분해 일기예보를 한다.

중국에서 살면서 한국을 바라볼 때마다 가장 한심하게 느껴졌던 건 다름 아닌 중국의 96분지 1, 중국의 1개 직할시(충칭직할시, 8만2000㎢)와 엇비슷한 좁은 남한 땅(9만9000㎢)에서의 망국적 지역갈등이다.

우리나라에서 행정수도 문제가 핫이슈가 되었을 당시 중국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필자가 베이징에서 여름방학을 보낼 당시 한 중국인 친구가 수도를 어디로 천도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지도를 꺼내 공주 부근을 가리키며 여기라고 했더니 중국친구의 했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흐응, 거기서 거기네.”

거기서 거기라니 일순, 당황했지만, 금방 수긍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 공주로 천도하는 건 베이징으로 치자면 제일 북쪽 구(區)에서 제일 남쪽 구(區)로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베이징은 춘추전국시대 연(燕, BC11~BC222세기) 나라부터, 요(遼, 907~1125년), 금(金, 1115~1234년), 원(元,  1260~1368년), 명(明, 1402~1644년), 청(淸, 1644~1911년) 나라의 수도로서 천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요 나라이후 수도로 베이징에 도읍을 정한 제국은 최소한 100세가 넘는 장수를 누려왔다. 더구나 베이징은 분열기 지방정권의 수도가 아니라 원∙명∙청, 현재 중화인민공화국(1949~)에 이르기까지 합계 약 700년간 통일국가의 명실상부한 수도였다는데 여타 중국의 고도(古都)와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

▲요절하는 도읍지 난징

중국의 또 하나 서울이자, 남쪽 서울이라 할 수 있는 난징으로 가보자.

난징 북쪽으로는 중국 제1의 강인 '어머니강'인 창강(長江, 일명 양쯔강 약 6300㎞)이 동에서 서로 흐른다. 우리나라 김제평야보다 수백 배 넓은 대평원 지대의 중심에 위치한 난징은 물산이 풍부하며 교통이 편리하고 미녀도 많은 도시로 이름이 높다.

난징의 면적은 6597㎢로 서울 면적의 10배 가량이다. 난징의 여름날씨가 충칭, 우한(武漢)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찜통으로 손꼽힐 만큼 무더운 것을 빼놓고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기후도 쾌적한 편이다. 특히 난징의 가을은 우리나라 가을 못지않게 아름답고 날씨가 좋다.

하지만 난징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런 지리적 개황보다 수도로서의 역사다.

삼국시대 손권의 동오(東吳, 220~280년)부터 시작하여 동진(東晋, 317~420년), 송(宋, 420~479년), 제(齊,479~502뇬), 양(梁, 502~557년), 진(晉,557~589년), 남당(南唐,937~975년), 명(明, 1368~1402년), 홍수전의 태평천국(太平天國,1853~186년), 쑨원과 장제스의 중화민국(中華民國, 1912~1949년)까지, 모두 10개 왕조·정부의 도읍기간을 다 합쳐도 기껏해야 300여년 정도다.

명 나라 초기의 35년간을 제외하면 죄다 분열기 또는 지방정권의 수도에 지나지 않아, 고도(古都)로서의 질적 차원에서 볼 때 난징은 베이징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각성'의 도시 베이징 vs '이완'의 도시 난징

난징에 도읍을 정했다하면 제국이건 공화국이건 간에 평균수명이 30여년이며 3대를 못넘기고 요절하는 등 말로가 비참했다. 한마디로 ‘도읍지로서의 난징’은 승지가 아니라 패지요, 축복이 아니라 저주받은 도시다. 명나라도 3대 황제 영락제가 1402년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겼기 망정이지, 그대로 난징에 주저앉았다면 단명하고 말았을지 모른다고 한다. 쑨원과 장제스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가 난징을 수도로 삼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도읍지로서 '풍요의 난징'이 '결핍의 베이징'에 비해 훨씬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다산 정약용은 “중국이란 만리장성 이남에 있는 나라를 말한다.”라고 '아방강역고'(1811년 저)에 썼다. 그렇다면 만리장성은 휴전선이나 다름없고 베이징은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최전방 국경도시나 다름없다.  베이징을 사람에 비유하면 엄숙하고 절제된 언행에 근엄한 표정에 칙칙한 색조의 관복을 입은 초로의 남자 같은 분위기다.

반면 난징은 머나먼 남녘 후방 깊숙히 자리한 안락하고 풍요로운 도시다. 게다가 중국 제1의 강 창강이 도시 북쪽을 막아주는 천연의 장벽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베이징이 '각성' 상태의 도시라면 난징은 '이완' 상태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왠지 모르게 난징에서는 낮잠을 즐겨도 되고 시도 때도 없이 게으른 하품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남성적인 베이징과는 대조적으로 난징은 여성적인 도시다. 난징을 사람에 비유하면 단아한 몸매와 기품 있는 용모, 우아한 미소를 담은 표정에 약간 관능적인 전통의상 치파오 차림의 중년 여성이라고나 할까. (다음 편에 계속…)

◆참고서적: 강효백, 『협객의 나라 중국』, 한길사, 2012.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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