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SWOT 분석 ⑥] 남경필, 협치 가능성 증명···원희룡, 미래지향적 개혁보수
2017-01-22 16:00
아주경제 이정주 기자 = 통상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의미 있는 지지율의 기점은 5%라고 한다. 일단 이 벽을 넘으면 당장은 순위가 뒤처지더라도 반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대선을 앞두고 있다. 5%가 마의 벽이라는 기존의 통념이 적용되지 않는 시국이라는 해석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도 기회가 열려있는 이유다. 한나라당 시절 여권의 소장파로 지도부와 딴 소리를 내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라 불리던 이들이 어느새 대선주자로 올라섰다. 여야를 넘나드는 정계개편의 파고 속에서 이들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대선주자로서 남 지사의 강점(strength)에 대해 무엇보다 대연정을 통한 협치의 성공사례를 남긴 점이라고 강조했다. 연립정부 또는 협치가 일상화된 유럽과 달리 각 정당 및 정파 간 갈등이 극심한 한국 정치에서 이룬 성과이기에 더욱 돋보인다는 평가다. 남 지사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를 통해 경기도지사로 몸담은 이후 분점정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야당에 연정을 직접 제안했다. 이에 따라 사회통합부지사직을 야당에 내주고 연정실행위원회 등을 구성했다.
남 지사는 1965년 생으로 안희정 충남지사와 함께 현재 거론되는 대선주자 중 가장 젊다. 생물학적으로 젊다는 장점을 젊은 사고로 확장시키기 위해 최근 남 지사는 안 지사와 함께 청와대와 국회 등 주요 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모병제 전환과 사교육 철폐 등 파격적인 공약 또한 개혁보수의 근거가 되고 있다.
남 지사의 가장 큰 약점(weakness)은 5선의 국회의원 활동 기간 동안 따라다닌 ‘금수저’ 논란이다. 실제로 남 지사는 선친인 남평우 전 의원의 지역구인 수원 팔달구를 물려받아 내리 5선 의원을 지냈다. 선친은 경기도 내에서 손에 꼽히는 운수업체를 운영한 기업인이었다. 군대에서 성추행 혐의로 실형을 받은 장남의 이력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지난 2014년 군 복무 중이던 남 지사의 장남은 후임병들을 추행한 혐의로 1심 군사법원으로부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5%를 넘지 못한 남 지사에게도 기회(opportunity)는 열려 있다. 이른바 ‘반기문 대세론’이 주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귀국 후 편의점 생수, 턱받이, 퇴주잔 논란 등 각종 해프닝을 만들며 스스로의 위신을 깎아먹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기문 대세론이 꺾일 경우, 연정과 협치 성과를 만들어 본 남 지사에게 보수진영과 중도층이 이동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정치판에서 금수저·흙수저 논란이 본격 이슈화될 경우 남 지사에게 가장 큰 위협(threat)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흙수저의 상징이자 야권 다크호스로 불리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오는 23일 유년시절 자신이 일했던 시계공장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한다. 노동자에서 검정고시를 거쳐 자수성가한 이 시장과 같은 대항마들이 떠오를 경우 남 지사로선 대중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남 지사는 금수저 이미지와 함께 박근혜 정권에 크게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며 “소장파들이 그동안 개혁을 외치면서도 결국 이명박·박근혜 정권 탄생에 협력했다는 부분을 쉽게 지우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신화, 수석 인생이라는 불리는 원 지사의 강점(strength)은 미래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제주도에 전기차 상용화를 위한 기반시설을 다지며 변화를 추진 중인 원 지사는 지난 16일부터 나흘 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인포럼(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원 지사는 ‘전기시스템에서 발휘되는 4차 산업혁명의 힘’ 세션에 토론자로 나서 제주도의 규제 및 정책에 대해 소개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대선에서는 안보·복지 등 이슈에 밀려 상대적으로 대선주자들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영역을 원 지사는 착실히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에너지 정책은 미국 대선에선 안보, 경제 등과 함께 별개의 공약으로 분류될 만큼 중요도가 큰 부분인데, 이에 대해 전문적으로 준비하는 차세대 주자는 국내에선 거의 찾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원 지사는 학력고사와 사법고시 수석합격으로 의원 시절부터 ‘흙수저의 희망’으로 유명세를 탔다. 여당의 험지라 불리는 서울 양천 갑에서 3선 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수석이라는 타이틀이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성장한 단계에 이른 지점에서는 스스로 프레임에 갇혀 버리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원 지사의 약점(weakness)인 셈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원 지사는 지난해 관훈토론에서 유독 ‘공정사회’를 강조했다. 그는 계층상승이 가능한 공정사회를 전면에 내걸었다. 행정 경험에서는 라이벌로 꼽히는 남 지사나 안 지사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원 지사에게도 기회(opportunity)는 역시 반기문 대세론의 급변과 함께 불어 올 제3지대 정계개편이다. 반 전 총장의 조기 낙마 시, 개혁보수를 자청하는 바른정당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함께 남 지사, 원 지사 등 3자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외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전문적으로 준비를 한 후보는 실질적으로 없는 셈이다. 다만 탄핵 국면에서 미래산업에 대한 이슈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도 있다.
원 지사에게 위협(threat) 요소는 개혁적 이미지와 달리 과거 여권에서의 협조적인 모습을 보인 이력이다. 여권 소장파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결국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현 새누리당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유 전 원내대표와 남 지사와 함께 당내 경선을 실시하더라도 대선후보로서의 ‘중량감 부족’ 문제도 위협 요소로 꼽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원 지사가 기존 여권에서 개혁적 이미지를 잘 쌓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대선후보로 중량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반기문 대세론이 꺾이는 시점에서 이를 만회할 한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