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의 행복한 경제] 한국경제 '한강의 기적'은 잊어라

2017-01-18 11:01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새 정부는 DJ정부보다 더 어려운 정부가 될 것이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는 모든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비장한 각오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1998년 2월에 출범한 DJ정부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수술대 위에 올라온 한국경제를 수술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1998년 바닥을 친 경제는 1999년 다시 크게 반등했다.

그러나 2017년에 새로 출범할 정부 앞에는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어려운 숙제들이 쌓여 있다. 게다가 준비할 시간도 없다. 상반기에 조기 대선이 예상되고, 2개월의 인수위원회 활동도 없이 ‘사각의 링’에 올라가야 한다.

나라 안팎의 경제사정은 IMF 외환위기 만큼이나 어렵지만, 문제는 경제주체들이 그런 위기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경제주체들이 사익을 양보하고, 공익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로 통화정책은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 믿을 건 재정정책 밖에 없는데, 문제는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없다는 점이다.

내수가 지지부진한데 수출도 2년 연속 감소했다. 올해 수출은 좀 나아질까?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를 통해 우리나라로 하여금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우리기업과 우리제품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한가한 얘기를 하고 있다. 6개월 비상시국을 선포하고, 여야를 막론한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5000만 국민으로 하여금 “IMF 외환위기 당시처럼 힘을 모아달라”고 요청해도 부족할 상황이라는 점을 모르나보다. 한강의 기적, 외환위기 극복 등 한국경제의 성공신화는 잊어버려야 한다.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지만,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한때 세계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미국의 모토롤라와 핀란드의 노키아는 시장에서 사라져버렸다.

세계 1위를 자랑했던 우리나라 조선업이 요즘 휘청거리고 있다. 국가의 흥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800여년전에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징기스칸은 “내 자손들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몽골족이 중국 본토에 세운 원나라(1271∼1368)는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멸망했다.

과거의 성공신화 따위는 ‘잊어버려라'는 뜻의 '언런'(unlearn)을 모토로 삼은 기업이 있다. 바로 GE(General Electric)다. GE는 1892년에 에디슨 전기회사와 톰슨-휴스턴 전기회사의 합병으로 설립된 회사다. 전구, 가스터빈, 가전, 철도, 항공기엔진 등을 만들던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였다. 세계 180개국에 33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시가총액 세계 13위의 거대 기업이다. 그리고 1896년에 처음 시작된 다우지수(DJIA)에 포함된 12개 회사 중 하나였으며,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회사이기도 하다.

지난 120여년동안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교체되어 온 와중에서도 유일하게 GE만 살아남은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는 변신이었다. 그런 GE가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이멜트 회장은 ‘디지털’, ‘산업인터넷’, ‘소프트웨어’ 분야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겠다고 했다.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하고,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25년 묵은 거대 기업이 이제 막 창업한 ‘스타트업’처럼 행동하고 기업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 2015년에는 금융부문을 매각했고, 2016년에는 가전 사업부를 중국의 ‘하이얼’에게 팔았다.

거대한 공룡 같은 기업 GE가 핵심 사업부를 매각하는 변신을 통해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성공신화를 잊어버리고, 새롭게 변신해야 할 위기 앞에 선 한국경제는 과연 그럴 자세가 되어 있는지 자문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