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타투루거우, 군민(軍民)이 함께 만든 국경의 관문

2017-01-03 17:11

타투루거우 국경수비중대 대원이 쑨즈펑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말을 몰고 3169 고지 순찰 임무에 나섰다.[사진=인민화보 돤웨이(段崴) 기자]

 

러쓰카무촌에서 타스쿠얼간현까지의 길이 산사태로 붕괴돼 몇십 미터가 끊어졌다. 수비대원 치라커가 이끄는 타투루거우 국경수비중대 대원이 붕괴 지점의 상황을 살피러 떠났다. 절벽에 붙은 측로는 폭이 십여 센티미터 밖에 안 되고 수 미터 아래는 급류가 흐르는 강이다. 대원들은 손에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전진하는 수 밖에 없다.[사진=인민화보 돤웨이(段崴) 기자]

 

훼손된 구간에 도착하자 차가운 급류가 몰아치는 강을 건너야 했다. 수비대원 치라커가 대원들을 도와 불도저를 이용해 강을 건넜다.[사진=인민화보 돤웨이(段崴) 기자]

 

타투루거우 국경수비중대 쑨즈펑 중대장이 수비대원 마이마이티의 집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타지커족의 전통인 손등 키스를 나눴다.[사진=인민화보 돤웨이(段崴) 기자]



인민화보 웨샤오핑(嶽小平), 루웨(魯越)기자 =해발 3010m의 신장(新疆) 군사지역에서 국경수비를 담당하고 있는 ‘타투루거우(塔吐魯溝) 국경수비중대’. 이 부대의 주둔지는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지대 신장 타스쿠얼간(塔什庫爾幹)현 러쓰카무(熱斯卡木)촌이다. 10월 중순, 중국 내륙은 가을 기운이 완연했지만 북서 변경에 위치한 카라쿤룬(喀喇昆侖)고원은 이미 추운 겨울이었다. ‘생명의 금지구역’인 이 곳에서 타투루거우 국경수비중대 대원들은 지세가 높고 춥고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
우푸랑거우(吾甫浪溝)로 향하는 국경 순찰로는 산세가 험준해 강을 따라 건설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 옆의 산은 일년 내내 홍수로 침식돼 자주 무너져 타투루거우 국경수비중대의 순찰은 어려움을 더한다. 일부 노선은 절벽에 가깝고 돌이 자주 굴러떨어져 통과할 때 특히 조심해야 했다.
이번 우푸랑거우 순찰에서도 순찰로가 무너지는 ‘악운’을 피할 수 없었다. 순찰차를 몬 지 1시간도 안 돼 붕괴로 인한 50m 길이의 훼손 구간이 나타났다. 붕괴 구간을 벗어나자 산골짜기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대원들은 역풍을 맞으며 전진해야 했다.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모래가 얼굴을 때렸다.
약 2시간 뒤 대원들이 예정 지점에 도착했다. 중대장 쑨즈펑(孫志鵬)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명령했다. “은신처에 대원 두 명과 음식을 남겨 놓고 다른 대원들은 신속히 매복해 관측한다.” 국경수비대원 마이마이티(買買提)는 높은 곳으로 뛰어가 망원경으로 사방을 관찰했다. 쑨즈펑 중대장은 “마이마이티는 책임감있는 대원으로 이곳 상황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순찰은 해방군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타투루거우는 내 고향이기 때문에 나에겐 이곳을 지킬 의무가 있다.” 순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이마이티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순찰에서 돌아오자 이미 저녁이었다. 순찰대원들은 러쓰카무촌 입구에서 마이마이티의 아버지이자 노 수비대원인 이부 러이무(依布·熱依木)를 만났다. 백 세 고령이지만 여전히 건강한 그는 순찰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경의를 표했다. 반평생을 의무 국경수비대원으로 보내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임무를 자신의 아들 손자 세대에게 넘겨주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마이마이티가 수비대원이 된지 40년이 흘렀다. 그의 네 명의 아들도 성인이 됐고 전부 수비대원을 지냈다. 그중 큰아들인 치라커(其拉克)는 수비대원이 된 지 10년이 됐다.
타투루거우 국경수비중대 설립 20여 년 동안 대원들은 주둔지의 유목민을 꾸준히 도왔다. 현지 타지커(塔吉克)족 유목민도 스스로 의무 수비대원이 되어 중대원들과 함께 국경을 지켰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