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정의화 전 국회의장 "국가 운영 틀 바꿀 때…'3共 시대' 위한 개헌 필요해"

2016-12-12 06:00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새한국의 비전' 집무실에서 아주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가장 중요한 건 국가 운영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의회주의자', '해결사' 등의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붙는다. 새누리당 출신이었지만 박근혜정부, 집권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 19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던 정의화 전 의장이다.

정 전 의장은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개헌을 필두로 한 새로운 정치를 일궈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내년 1월 초 디지털정당을 창당할 예정이고, 구정 설 연휴 전후로 '제3지대'론의 성패와 관련한 구체적 결심을 밝힐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 대한민국의 '리스타트(재시작)'를 꿈꾸며 오늘도 여의도에 있는 그다. 

신경외과 의사 출신으로 15대 총선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후 부산에서만 내리 5선을 한 그다. 의장 퇴임 후 정계를 떠나는 수순을 거부한 채, 국가의 '백년대계'를 연구하기 위한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을 세웠다. 그런 그를 지난 7일 여의도 '새 한국의 비전' 사무실에서 만났다.

◆ "보스·계파 정치 잔재가 현 사태의 원인…'3共 시대' 위한 개헌 필요"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 현 시국에 대해 진단한다면.
= 상당히 마음으로는 망연자실하고, 특히 대통령으로부터 사건이 발생했다는 예기치 못한 일에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아주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괴감도 많이 느낀다.

-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 세상 일에는 인과응보가 있는 법인데 과거 군사독재, 유신정치의 잔재를 말끔히 씻지 못했다. 과거 군사독재 정치의 잔재로서 소위 보스정치, 계파정치가 계속되다보니, 정치하는 사람들을 일종의 '조직원' 비스무리하게 만든 경향도 있었다. 성찰이 부족한 정치집단화가 된 정당도 한 몫 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많이 든다. 세월호 참사나 최순실 게이트는 자칫 대한민국 호가 침몰할 수 있다는 암시이자 적신호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촛불집회에도 참여했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젊을 때 많이 듣던 양희은 씨 노래를 들으니 눈물이 나더라. (미소를 지으며) 세종로에 서 있었는데 내게 '정치 잘 하시라'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의장 잘 하셨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어울려서, 분노를 절제하는 비폭력 평화시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와 달리 우리 국민들이 굉장히 성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민주공화국의 성숙된 시민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 대통령 탄핵까지 가게 한 것은 정치권이 아니라 촛불의 힘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치인으로서는 사실 부끄러운 지적인데.
= 당연하다. 다른 것보다도 박근혜라는 후보를 세우는 데 앞장섰던 사람 중 하나로서 굉장히 슬프고 국민들께 송구하다. 의장을 하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것도 의도적인 게 아니라, 삼권분립을 지키고 국회가 청와대 거수기나 '통법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해왔다. 정치를 20년간 해오면서 나름대로 깨끗하고 올바른 정치, 국민을 위한 신념의 정치를 해왔지만, 기존 정치판이 깔고 있는 오염된 정당정치, 보스 정치, 계파정치의 일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내 자의와 상관없이 조직 윤리에 따라 움직였었다. 그런 것들이 상당히 자괴감을 준다. 정치를 해 온 사람으로서 일말의 책임을 안 질 수 없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박근혜 사당이 됐고, 내가 사랑했던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은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당으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 박 대통령 탄핵에 따라 황교안 총리의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섰다. 이후 정국수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저는 황교안 총리 체제가 6개월까지도 갈 수 있다고 본다. 탄핵소추안을 낼 때 명백한 위법사실 2~3개만 넣어 심플하게 했어야 한다. 세월호 부분 등 다 조사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5월 초까지 심리 기간을 다 채우면 대선은 7월 초(60일 이내 대선)에 하게 되니 그 때까진 총리 대행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대신 같이 해야 될 것이 '헌법개정'이다. 국회가 다음주라도 개헌특위를 만들고 논의를 해 나가야 한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 현 상황을 가리켜 앙시앙 레짐(구 체제)의 종언이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이것이 곧 개헌과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 87년 체제 이후 30년 간 지속돼 온 구 체제는 이제 바꿔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운영의 틀을 바꿔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기본적인 방법이 개헌이다. 우선 선거제도를 바꿔 국민들의 의사가 국회에 반영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게 시급하다. 국민들의 의사를 최소한 75% 이상 반영할 수 있는 의회가 되려면 현재의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사표(死票)를 줄여야 한다. 선거 연령도 만 18세 이하로 줄여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서 '국민'에 대한 존경과 인정이 필요한 때다.

- 시간적으로도 개헌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권력구조만 대상으로 한 '원포인트'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 권력구조 개편이 가장 중요하다. 소위 말하는 이원집정부제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안에 가까울 것이다. 그 외에도 지방분권, 국민 기본권 강화 등 여러가지가 바뀌어야 한다. 이미 연구가 많이 돼 있다. 개헌을 왜 해야 하는지 전 국민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념적 틀에 얽매인 진영논리의 시대가 아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놓이고 이웃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시대, 말하자면 '공생(共生)·공영(共榮)·공진(共進)'하는 '합의의 시대'가 돼야 한다.

◆ "비패권주의자들과 새로운 정치체제 구축…구정 전후로 구체적 결심 밝힐 것"

- 그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제3지대론'를 주장하고 있는데 간략히 제3지대에 대해 설명해달라.
= 대한민국 정치의 틀을 바꾸고 국가 대개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필요한 게 개헌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양 극단에 선 친박(친박근혜), 친문(친문재인)을 제외한 사람들 중에서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힘을 합치자는 것이다. 제3지대가 정권을 쥐고 개헌을 통해 2020년 4월 21대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르면, 그 때부터 대한민국은 신 체제 출범과 함께 '리스타트(Restart, 재시작)할 수 있다.

- 지금 거론되는 대선주자들도 이에 동의하나.
= 임기 단축을 통해 12월 선거를 기준으로 2년 3개월 가량의 과도기가 있다. 그 때 일종의 시범적 국가운영이 가능하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당히 공감했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이러한 의견에 많이 근접하고 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95% 생각이 같다고 본인도 말씀하시고,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와도 만나 견해를 전했다. 앞으로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만날 것이며,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이 만약 탈당하면 그분들하고도 대화를 해볼 것이다. 내년 1월에 들어오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대상이다. '텐트'는 작아질 수 있지만 일단 펴보려고 한다.

- '새한국의 비전'에서 그 청사진을 위한 정책들을 개발하게 되나.
=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어젠다(의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든 것이 '새한국의 비전'이다. 저출산, 4차 산업혁명, 통일 이런 의제들을 다 들여다보는 곳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가질 정도로 디지털화 된 사회인데 우리 정치는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늦어도 내년 1월 초에는 출발할 수 있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통합한 '하이브리드 정당'을 구상중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받아 정책으로 엮어내는 작업을 벌써 6개월 간 했다. 당이 되기 직전 단계까진 갈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창당준비위원회' 같은. 촛불집회를 일례로 들 수 있는데, 정치의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스마트폰을 통해 구현하겠다.

- '협치의 플랫폼'으로서 본인의 역할을 규정한 바 있다. 정치인 '정의화'의 꿈은 무엇인가.
= 비패권주의자들과 제대로 된 정치체제를 만들어 공정한 룰에 의해 대통령 후보를 뽑은 다음, (제3지대의) 이 사람들이 '섀도우 캐비닛(예비내각)'으로서 함께 다음 3년을 경영하는 것이다. 거기에 텐트를 치고 플랫폼을 까는 역할을 내가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있다. 그러나 만약에 이 제3지대 형성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너무나 다르게 진행되거나, 완성되지 못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여러가지 정치지향 옵션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소한 그런 내 결심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구정연휴 전후가 되지 않을까 한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이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