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수연, 끌리는 배우의 조건

2016-11-03 10:32

한수연 인터뷰[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김아름 기자 = 늘씬한 키에 서글서글한 웃음이 참 매력적인 배우다. 분명한건 작품 속에서 우리가 봤던 그 악한 인물의 느낌은 아니다. 세차게 뺨을 때리며 표독스러운 눈빛을 짓던 사람이 아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여배우만 있을 뿐이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KBS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김헌(천호진 분)의 딸이자, 영(박보검 분)의 생모가 죽고 김헌이 세운 두 번째 중전 김 씨를 연기한 배우 한수연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가 만났다. 작품 속 긴 머리 대신, 짧게 자른 머리가 참 인상적이었다.

“보통 작품 하나를 끝나면 그 여운을 갖고 가고 싶어서 헤어스타일에 손을 안대는 편인데 이번엔 정말 힘들었어요. 너무 고단했어요. 작품에서 벗어난다기보다는 저를 너무 찾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 성격이 원래 생고생을 하고 끝까지 저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작품이 좋은 반응이 오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웃음)”

데뷔 10여년 만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오던 극 처음으로 악독한 악역 연기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악역이었지만 그의 명품 연기에 많은 시청자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사람에게는 누구나 불이나 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악역은 마음껏 해도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웃음) 제가 가끔 드라마를 보면서도 ‘내가 저래?’라고 생각할 정도가 있더라고요. 하하하. 어떻게 하면 더 나빠 보이고 악독하게 보일까 연구 많이 했습니다. 분장 없이도 표정이나 분위기로 커버가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웃음)”
 

한수연 인터뷰[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첫 악역이라 힘들 법도 했다. 그러나 한수연은 주위의 좋은 반응들에 위안 받고 힘을 얻었다며 옅게 웃었다. 연기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며 유려한 내공을 자랑했다.

사실 한수연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생소하다. ‘일말의 순정’ ‘일리있는 사랑’ 등의 호흡이 긴 작품에도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지만 임팩트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시절 헝가리에서 오랜 시간 거주하면서 진하게 드리웠던 고국을 향한 향수를 가장 사랑하던 영화로 달랬단다. 그렇게 ‘영화광’이었던 소녀 한수연은 자연스레 배우의 꿈을 키워갔다.

“헝가리에서 살 때는 하루 일과가 학교를 끝나고 극장을 가는 거였어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 때면 정말 행복하고 안정이 됐거든요. 그러다보니 여배우에 대한 로망도 생기게 됐고, 영화의 매력과 분위기에 심취했죠. 그렇게 막연히 생각만하다가 한국에 들어왔고 우연하게 오디션 기회가 생겨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니게 됐습니다. 제가 길거리 캐스팅이 된 것도 아니고, 일일이 다 두드리고 그러다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한수연은 그렇게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다. 주위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소신을 묵묵히 지켰다. 그렇게 10여년. 그 소신은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빛을 발하게 됐다. 타협하지 않은 용기가 만들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축복일까?’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어요. 그리고 그 꿈들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고요. 그래서 다른 아르바이트로 제 생계를 유지해나가면서도, 연기만큼은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그런 작품들이 인지도나 이슈와는 거리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그걸 위해 움직이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한수연 인터뷰[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실제로 한수연과 이어지는 인터뷰는 진중함이라는 색이 묻어나왔다. 그저 영화가 보는 게 좋았던 어린 소녀가 아닌, 깊은 마음으로 연기를 이해했고 배우라는 일을 사랑했음이 느껴졌다.

“사실 연기하는 사람에게는 송곳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감정 연기가 자신 있는데, 겉에 보이는 모습을 보면 이렇지만 알고 보면 또 다른 숨은 사연이 있는거요. 그래서 작품의 후반부에 갈수록 그 사연들이 드러나는 작품이 참 좋더라고요. 짓눌린 상황에서 버티는 치열함을 가장 많이 연기했어요. 그런 면에서 ‘구르미 그린 달빛’의 중전 김 씨는 제게 참 매력적인 캐릭터였죠.”

악역에게 ‘매력’이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한수연은 자신에게 맡은 악역을 매력적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이 분명이 있었다. 그녀는 데뷔 후 가장 많은 관심과 큰 사랑을 받아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힘들었던 작품을 이제 내려놓고 당분간 휴식기를 취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음 작품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전했다.

“일단 제가 3월부터 맡고 있는 여행 프로그램에 계속 참여할 예정이고, 드라마 찍느라 챙기지 못했던 집안일 도 할 예정이에요. 제가 지향하는 프로그램은 스스로 끌리는 작품이에요. 어떤 사람으로나 배우로서도 좋은 사람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연기를 잘하는 건 배우로서의 기본 중에 기본이고, 인간적으로도 프로페셔널한 배우이고 싶죠. 감정을 더욱 진실하게 전달 할 수 있는 배우요‘ 이 배우가 하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설득이 된다’고 느낄 정도로 끌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저의 가장 큰 꿈입니다.”

끌리는 배우란 무엇일까. 연기를 잘하거나, 외모가 뛰어나는 등의 이유가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수연은 그 어떤 이유와 방법이 아닌, 그저 배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힘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걸어왔던 시간들을 뒤돌아봤을 때 남아 있는 흔적들은 그가 끌리는 배우라는 걸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한수연 인터뷰[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