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국민가수 희망의 아이콘 인순이가 이 시대의 청년에게 던지는 메시지

2016-11-01 15:49

[사진=인순이 제공 ]


​아주경제 김호이 기자 =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호이의 사람들 김호이 입니다. 여러분 혹시 '거위의 꿈'하면 떠오르는 가수가 있나요? 이번 인터뷰는 바로 희망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국민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인 인순이의 인터뷰인데요.
지금까지 몰랐던 가수 인순이의 스토리 그리고 희망의 아이콘이 이 시대의 청춘·청년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달려가는 청년이 되길 바랍니다.

Q. 가수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는 가수를 꿈꾸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 집안에서 일할 수 있는 청년이 제가 되는 바람에 사실은 돈을 벌기 위해 나왔어요. 그래서 저의 목적은 가족 부양을 위해서 가수가 된 케이스입니다.

Q. 다른 직업들도 많이 있는데 왜 가수였나요?
A.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였는데요. 사실은 저는 맨 처음에 수녀님이 되고 싶었어요.
수녀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바깥에서 활동을 안 하고 수녀원 안에서만 있으면 '사람들이 날 쳐다보지 않겠다'라는 생각으로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돈을 못 번 대요. 그래서 수녀는 포기했고 그다음에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건 되지 못하고, 그런데 어떤 사람이 '노래를 하겠냐?'고 해서 '돈 주냐'고 물었더니 돈을 준다고 해서 돈에 눈이 어두워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지금 인순이씨가 가수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이기도 한데 해밀학교를 설립하게 된 계기와 해밀학교는 어떠한 학교인가요?
A. 저는 태어난 배경, 자라난 환경 모든 걸 볼 때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게 기적같이 느껴져요. 물론 이 해밀학교를 생각한 지 10년 정도 되었지만 10년 전에 이미 제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기적 같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돌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저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양로원을 해야겠다. 어르신들을 모셔야겠다. 내가 품에서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매년 5월만 되면 '아! 어르신을 모셔야지' 또 12월이 되면 '아이들을 키워야지'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가 2010년도쯤에 라디오 생방송에서 다문화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률이 28%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왜 내가 해야 될 일인가? 왜?'라며 이유가 있고 설득이 돼야 하잖아요. 근데 '내가 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가 이유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학교를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다문화만 하는 학교를 생각했었는데 '이건 옳지 않다', '다문화만 모아둔다면 또 다른 우리만의 세상에 갇혀 살 수 있다'라는 생각에 저소득층 아이들이라든지, 조손가정 아이들이라든지 그냥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서로 상호 간에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해밀학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22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는데 반은 보통의 아이들로 반은 다문화 아이들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Q. 해밀학교가 중학교로 알고 있는데 왜 초등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아닌 가장 힘들다는 중학교를 선택하게 됐나요?
A. 바로 그겁니다. 힘들어서 제가 나섰습니다. 사실은 중·고등학교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무상으로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고등학교는 조금 더 자리를 잡고 난 다음에 그때 다시 할거고요, 중학교는 제가 사실 사춘기를 수십 년 동안 경험을 했습니다.
왜냐면 풀리지 않은 답에 대한 갈증, 우리 엄마는 왜? 우리 아빠는 왜? 나를 이렇게 틀린 데서 낳아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도록 만들었나? 이건 돌아갈 수 없는 답이잖아요.
해결할 수 없어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근데 그걸 가지고 원망하면서 수십 년을 살았거든요.
그런 다문화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나는 미국 사람이야', '나는 한국 사람이야', '너는 어디사람이야'라는 정체성 때문에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 아이들도 이런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춘기 때 제가 옆에서 같이 걸어주고 싶었던 거죠. 나는 이런 삶을 살았고 나는 이런 일에 부딪혔을 때, 누군가가 나를 놀렸을 때, 난 이렇게 참아냈던지 난 이렇게 싸웠던지 난 이렇게 했어 그래서 아이들이 얘기할 때 '야! 그 얘기 듣고는 싸웠어야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야'라고 해주던지 '그 얘기는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라', 아니면 '너 그 얘기 듣고 가만히 있을래? 네가 성공을 해서 뭔가 보여줘야지'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경험했던 얘기를 해주고 아이들 옆에 있어 주고 싶었어요.

Q. 인순이씨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A. 우리 딸을 낳았을 때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고 제가 새로 태어난 것 같았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사실 사는 것이 너무 치열했어요. 그래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일만 하면서 살았는데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는 꽃을 보더라도 '저 꽃이 저렇게 예쁜 색이었나?' 하늘을 보면서 '오 하늘이 파랗네!' 그리고 '구름이 하얗다'는 걸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 실감 나게 알게 됐어요.

Q. 딸 세인 양을 낳고 키우면서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으신 가요?
A. 세인이가 자라나는 모습에서 하나씩 뭔가를 터득해가는 장면을 볼 때, 맨 처음 뒤집을 때, 그다음에는 기었을 때, 그다음에는 걸었을 때, 그다음에는 엄마라고 불렀을 때, 이런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도 생각해 보면 내가 쓰러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 내가 무릎 꿇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엄마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더 앞으로도 살면서 어떠한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만회하면서 더 잘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엄마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Q. 가장 크게 넘어졌을 때와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A. 제 인생에서 가장 크게 넘어졌던 건 제가 자라면서 소소하게 겪는 일들이 저한테는 다 컸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저를 죽을 만큼 힘들게 만들었었어요. 그 이후로는 맷집이 좀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을 수십 년 동안 너무나 많이 겪으면서 울고, 죽고 싶기도 하고, 내가 왜 죽어? 살아야지 살아서 뭔가를 보여줘야 지하면서 살았던 날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실 지금에서 커다란 일을 만났을 때 '그래도 이건 죽을 만큼 힘든 일들이 아니야 그리고 이걸 내가 만회할 수 있어 나한텐 시간이 있으므로'라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건 제가 어렸을 때 겪었던 수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서 한 가지만 가지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나하나가 내가 죽을 수 있을 만큼 모두 저의 상처들이었어요.

Q. 인순이씨가 가수이자 엄마이자 해밀학교 이사장이신데 가요계 대선배로서 가수를 꿈꾸는 학생 그리고 청년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우선 마음가짐인 거 같아요. 가수는 파라다이스가 아니에요. 가수가 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야 하고 또 뭔가 TOP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올라갈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인생의 반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게다가 K-POP이라는 게 글로벌하기 때문에 더 그런 거 같아요.
저희는 외국에서 나가서 어느 정도 자유스러울 수 있거든요. 근데 요즘에 K-POP 후배 친구들은 외국에 나가서도 절대 자유스럽지 않아요. 외국에 팬들도 많으므로 그러면 항상 유리집에 있거든요. 뭘 하더라도 노출이 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하는 100을 다 누릴 수가 없어요.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하거든요. 후배들한테 '얘들아 이거 참 힘든 길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Q. 인순이씨가 생각하시기에 가수와 가수생활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가수는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죠.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내어주어야 하는 것 같아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공인이 된다는 건 받고 또 내어주는 것도 있고 책임감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Q. 인순이씨가 생각하시기에 꿈과 희망, 인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요즘 백두대간을 걷고 있어요. 거기에 가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지금도 산을 다니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산이 쉬운 줄 알았어요. 절대 쉽지 않더라고요.
우리가 지지난달에는 백두대간 노고단에서부터 천안봉까지 지리산을 탔어요. 새벽 2시 반에 출발해서 18시간을 걸어서 세석대피소라는 곳을 지나 아침에 일찍 촛대봉에 가서 일출 해를 보고 천안봉을 내려왔어요.
일출을 보기 위해 18시간을 걷고 그 다음날 12시간을 걷는데, 저희는 12시간까지는 생각 못 하고 한 6시간~7시간 정도면 되지 않을까 5Km라고 해서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촛대봉에서 볼 때, 천안봉이 여기 있으면 그 앞에 큰 산이 하나 있었어요. 그래서 '아 저 산하나 넘고 저 뒤에 천안봉 이건 뭐 식은 죽 먹기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우리가 넘어온 봉이 11봉 정도 되는 거 같았어요. 엄청 긴 시간을 새벽에 랜턴을 켜고 걷기 시작했거든요. 근데 산을 하나 딱 넘었어요. 그 다음에 천안봉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산 뒤에 가려진 또 하나의 산이 있는 거예요. '에이 지나온 산이 있는데 저 산 하나 정도는 넘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었는데 그 뒤에 또 하나의 산이 더 있는 거예요. 산을 3개 정도 더 넘으니까 그 뒤에 천안봉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노고단에서 갈 때 처음엔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지나다 보니까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우리가 발을 떼는 순간부터 우리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거였어요. 이게 인생인거 같아요. 중도에 내려오기 싫거든요. 중도에 내려오는건 더 험한 길이에요.
발을 하나 떼었으면 저 높은 산을 넘을 수밖에 없고, 내려올 수밖에 없고, 또 그러다 보면 이게 평평한 길도 있고 자갈길도 있고 바윗길도 있고요, 근데 그 높은 산에 올라가니까 다른 봉우리들이 보인다는 거죠. 내가 이만큼 올라가니까 고생에서 이만큼 올라온 성공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이 사람들에 관한 얘길 같이 들으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적어도 여기까지 올라오기까지 이 정도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된다는 걸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게 인생인 거 같아요

Q. 인순이씨의 꿈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A. 목표하고 꿈은 정말 많이 틀린 데 많은 사람이 꿈을 목표에다가 맞추죠.
'나에겐 꿈이 있어 어느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거', '나에겐 꿈이 있어 어느 대학 가는 거' 대학 갔어요 그 다음엔 뭐야? 그건 목표일 따름이잖아요.
저의 목표는 어렸을 때 살아보지 못했던 좋은 집에 살아보고 싶어요. 그렇다고 그 좋은 집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냥 내가 열심히 살아서 목표가 저기 있으므로 도달하고 싶은 거죠. 산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리고 작년에 제가 보디빌딩 나갔던 것도 목표였어요.
꿈은 '어떤 사람으로 내가 남들한테 남겨질 것인가?', '내가 어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가 제 꿈이에요.
그건 대안학교를 잘 만들어서 이 학교를 통해서 나간 아이들이 마음의 근육을 잘 만들어서 어디에 가든지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완전히 흔들리지 않은 삶은 없어요. 흔들려야 성장을 하므로 그러나 자기를 포기할 만큼 흔들려서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많이 흔들리지 않는 아이들, 많이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로 만들어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수많은 학생 그리고 청년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산다는 건 재미있는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다른 꿈을 또 꿀 수 있기 때문에 살 만하다는 거죠. 그리고 힘들다는 건 옛날도 있고 지금도 있고 다음도 있어요. 옛날 책을 보더라도 '요즘 얘들은 왜 저래'라는 말이 나와 있어요. 이게 언제든지 있는 얘기이고 힘듦은 언제든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힘들 때 정말 이것이 힘든 것일까?라는 물음을 꼭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힘든 건 누구한테도 있고 언제든지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힘든 것 때문에 무릎을 꿇어선 안 될 것 같아요.
내일은 뭐가 생길지 궁금해하면서 하나하나 헤쳐나가는 것에 대한 성취감에 많은 점수를 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Q. 인순이씨가 희망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는데 희망의 아이콘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와 불릴 때 어떠한 생각이 드시나요?
A. 희망의 아이콘으로 불리게 된 건 제가 아마 힘든 삶을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긍정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희망의 아이콘이라는 호칭이 불리게 된 것 같고요.
희망의 아이콘이라고 불릴 때 요즘에는 참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러분들께서 붙여준 그 이름을 헛되게 버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최근 많은 학생이 학교공부로 인해 꿈을 잃고 대학이 꿈이 되어버린 시대 속에 살고 있는데 이러한 학생들을 보시면서 교육인의 한사람으로서 현재의 교육 문제와 앞으로의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대학만이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대학에서도 고급의 지식을 알 수도 있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런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Q. 최근 N포 세대 7포 세대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청년을 보시면 어떠한 생각이 드시나요?
A. 시대가 많이 그런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너무나 한 곳만 바라보니까 포기를 할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 곳이 아니고 좌우로 뒤로 좀 봐준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을 거로 생각하거든요. 누구나 다 좋은 일을 하고 멋진 일을 하려는 것이 원인 같아요.
제가 요즘 강의를 많이 들으러 다니는데 왜냐면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해줘야 하므로 그래서 강사분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미래 세계는 회사에 들어가서 있는 일도 있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 인건비가 나올 수 있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이제는 더 직업으로써 더 남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대학이라는 것도 내가 뭘 해서 먹고 살 것인 건가를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길을 알려주는 곳이잖아요. 근데 그걸 꼭 대학에서만 찾는다고 하기에는 다른 길도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자기만의 기술을 가지고 자기가 언제든지 잘리지 않으면서 자기가 은퇴라고 생각하는 그 시점까지 갈 수 있는 직업들이 많거든요. 지금 보면 동네에 조그만 자신만의 빵을 만드는 빵집이 있는가 하면, 자기만의 공방도 갖고 있고요, 자기만의 취미를 살려가면서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커다랗게 돈을 못 모은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인건비가 나오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걸 하는 젊은이들이 많거든요. 포기할 게 아니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는 게 우선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한 곳만 바라보면 한 곳에 자리 하나를 놓고 수천 명이 싸우고 있습니다.
어차피 거기는 한사람밖에 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뭐하러 자신을 소진하고 있습니까? 그건 자기의 개성을 망가트리고 자기를 너무 일률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만이 가진 특별한 게 많은데 그 특별한 걸 자기가 못 찾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똑같을 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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