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대해부] 불신 가득한 재계 '맏형' 전경련의 존재 가치마저 '흔들'

2016-10-12 18:50
-존폐의 기로에 선 현실 부정 못해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라는 목소리 쏟아져

아주경제 윤태구·박선미 기자 = "아직 전경련 탈퇴 여부를 말한 단계는 아니다. 다만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대한 각종 의혹 및 비난이 기금을 출연한 회원사에까지 쏟아지고 있는 점은 너무 불편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대한 재계의 불신과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계 맏형으로서의 노릇은 커녕 창립 목적과 달리 정치권의 창구역할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들은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회원사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탈퇴 움직임이 일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주요그룹은 올들어 비공개로 진행되는 전경련 회의 조차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전경련이 유명무실해 진데는 기업들의 큰 형 노릇을 전혀 해내고 있지 못한 탓이 크다.

최대 현안인 법인세 인상은 물론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재계의 '입'이 돼야 할 전경련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허울만 남은 전경련에 굳이 회원사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불만이 기업들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전경련의 연간 예산은 약 500억원으로 삼성 110억원, 현대차와 SK가 각 60억원, LG가 50억원가량을 부담한다. 하지만 대기업의 이익조차도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조직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지는 이미 오래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미 전경련이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면서 "변질되지 않았다면 재계 '빅4' 총수가 전경련 회장직을 거부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경련이 본래의 운영 취지를 망각하고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해 '정경유착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 썼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사무국의 관료주의에 대한 지적이 나온 지도 오래다. 전경련이 회장(비상근)이 아니라 상근부회장 중심의 사무국 주도 체제로 바뀌면서 회원사들에 군림하는 태도는 기업인들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를 출범시켰다. 한류 문화와 스포츠를 통해 창조경제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미르 재단에는 삼성, 현대차, SK, LG 등 16개 주요 그룹에서 486억원을, K스포츠 재단에는 19개 그룹에서 288억원을 출연했다. 이 과정에서 전경련이 모금을 주도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이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금융기관 및 공공기관에서는 탈퇴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기업들이 정부의 입김에 오락가락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룹들의 활동반경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어서다

이같은 탈퇴 움직임이 주요 대기업까지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한 대기업 임원은 "아직 검찰 수사 진행 전이기 때문에 (탈퇴 등) 판단을 유보하는 게 맞지 않겠냐"며 "특정 기업 만이 아닌 대부분이 이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전했다.

대기업들이 탈퇴를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탈퇴를 해도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의 임원은 "전경련 해체론이 나와도 당장의 대안이 없다"며 "일단 전경련이 내부에서 결론을 내고 어떤 식으로든 방향 설정을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은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경련 해체설과 관련, 손사래 치며“나중에 말씀드리겠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