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수 감독이 그린 '아수라', 고통의 축제

2016-10-12 00:48

영화 '아수라'로 돌아온 김성수 감독[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토록 선명한 호불호(好不好). 영화 ‘아수라’를 두고, 관객들은 너무도 극명한 반응 차이를 보인다. 한 영화를 두고 벌어지는 설전은 치열했고, ‘같은 이유’로, 호(好)와 불호(不好)를 나눴다. 바로 ‘낯섦’에 대한 것이었다. 낯선 것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눈길이 갔던 건 이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김성수(55) 감독의 태도였다.

그는 전작인 ‘비트’나 ‘태양은 없다’ 역시 “당시에는 혹평이 더 많았다”고 말했고, 이는 관객 감소율로 아쉬운 행보를 보이는 ‘아수라’에 대한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은 딱 잘라 “두 작품과 ‘아수라’의 화법은 너무도 다르다”고 한다. 이 낯섦에 대해, 어느 정도는 예상한 눈치였다.

지난 9월 28일 개봉된 영화 ‘아수라’(제작 ㈜사나이픽처스·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악인들의 생태, 그 처절한 세계와 절망을 담은 작품이다. 개봉 첫날 청불 영화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고,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에 비하면 개봉 2주차인 현재 250만여 명의 관객 수는 다소 아쉬운 행보긴 하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은 관객들의 불편도, 환호도 모두 이해하고 예상하고 있었다. “죽도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원 없이 늘어놓은 김성수 감독에게 많은 것을 묻고, 또 들을 수 있었다.

영화 '아수라'로 재회한 배우 정우성(왼쪽)과 김성수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수라’를 두고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섭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그런 건 아니다. 영화에 관한 어떤 기대를 빗겨나가 충돌음이 생긴 것 같다. 굉장히 유쾌하고 통쾌할 것이라는 기대들이 있으셨던 것 같다.

이전 작들이 워낙 호평이었으니까?
- ‘비트’나, ‘태양은 없다’ 그리고 ‘감기’까지. 당시에는 이 작품들의 혹평이 더 많았다. 지나고 나니까 반응이 좋아진 거지. 하하하.

그렇다는 건 ‘아수라’ 역시, 시간이 지나면 판세가 뒤집힐 것이란 뜻일까?
- 전작들과 ‘아수라’는 다른 것 같다. 그 영화들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당대의 화법을 차용했다면 ‘아수라’는 새로운 ‘낯선’ 언어인 것 같다. 사람들을 모셔놓고 새로운 레시피를 보여주었는데 당신들이 먹던 음식과 다르기 때문에 맛있게 먹는 사람과 당황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다. 워낙 반응이 극명하니까.

폭력의 수위, 잔인함의 강도가 문제일까?
-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름 새로운 것을 내놓았는데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다.

확실히 기존의 누아르와는 다르다는 평은 공통적이다
- 이질감을 주려고 노력했으니까. 사운드에서부터, 미술, 앵글 등. 이 영화는 단순하고 쉬운 영화인데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이전 영화들과는 차별점을 두려고 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심상에 변화를 준 것이다.

‘아수라’를 두고 ‘죽도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하셨다
- 그래서 후회는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그건 정우성 씨와 제작사 한재석 대표의 덕분이었다. 다들 ‘밀어붙일 수 있게끔’ 도와줬다. 같이 참여해준 모든 분도 그렇지만…. 사실 이 영화를 두고 모두 ‘행복한 축제’라 여기는 이는 없었다. 다들 전문가니까 이 영화가 쉽지 않은 길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거지. 제 표현대로라면 ‘아수라’는 ‘고통의 축제’다. 일정한 리스크가 따를 것을 알면서 배우, 스태프, 제작사, 배급사가 승선을 해준 거다.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에 이어 '아수라'로 4번째 호흡을 맞춘 정우성(왼쪽)과 김성수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고통의 축제’에 참여한 배우·스태프들은 자부심이 굉장한 것 같던데
- 우리가 흥행의 노예는 아니지만 결국 영화라는 게 산업이니까. 배우들도 김성수를 위해 이 작품에 참여한 게 아니라 이 영화를 했다는 어떤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흥행하는 영화만 기획하고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런 영화도 해야겠다는 것 아닌가. 제가 ‘아수라’가 흥행하길 바라는 건 이런 점 때문이다. 결과가 나쁘면 이런 새로운 것을 하겠다는 시도가 적어지지 않겠나.

‘죽도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지만, ‘고통의 축제’였다니.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 행복했다. 하하하. 영화를 찍으며 매일 전율했다. 장례식장신을 찍을 땐 덜덜덜 몸이 떨리기도 했다. 배우들이 캐릭터에 빙의돼 이해하고, 움직이는 데 다섯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걸 보며 가슴이 쿵쿵 뛰더라. 영화감독에게 인생의 호사가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주연배우들도 특별했지만, 조연배우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 김원해 씨가 정말 대단했다! 영화에서 많이 편집됐는데 김원해 씨의 신을 모두 정리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사실 이제까지 김원해라는 배우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몰랐다. 그가 해왔던 역할과 작대기 캐릭터의 차이가 있으니까. 배우들 사이에서는 정말 유명한 배우였고 만나 보니 단숨에 그에게 빠지게 됐다.

선구안이 있으신 듯하다. 배우 이범수며 유오성, 임창정 등 배우들에게 ‘인생 캐릭터’를 부여한 감독 아닌가
- 사실 이범수 씨는 당시 조감독의 선구안이었고…. 하하하. ‘태양은 없다’ 병국 캐릭터는 다른 배우가 하기로 하고 연습까지 마친 상황이었는데 조감독이 뒤늦게 이범수 씨를 추천했던 거다. 그때는 조감독에게 막 화를 냈었다. 왜 마음대로 일정을 바꾸냐면서. 그런데 오디션 영상을 보는 순간 마음을 바꿨다. 밤이었는데도 이범수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했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었다. 그리고 유오성 씨나 임창정 씨는 조감독 때부터 천재라고 생각했었고. 워낙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유해진 씨나 박용우 씨도 마찬가지였고. 선구안이라기보다는 그냥 인재들과 잘 만난 것 같다.

김성수 감독의 가슴을 뛰게 만든 '아수라'의 명장면, 장례신씬[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성수 감독하면 트렌디하고, 세련된 작품들로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겼었는데
- 아니다. 지금 보면 ‘비트’나 ‘태양은 없다’가 얼마나 촌스러운지! 하하하. 사실 언어라는 게 당대 젊은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니까 소진돼버리는 경향이 있다. 언어는 낡아지고…. 다만 소진된 언어가 전파돼 영향력을 남겼으니 기쁜 것이다. ‘아수라’의 경우에는 당대의 언어를 구사하기에는 제가 이미 늙어버렸고, 남자들의 세계로 가야지만 어떤 이야기를 자신감 있게 하겠다 싶어서 필름 누아르의 전형을 따랐다. 전형이라는 건 금방 소진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당대에 대한 해석으로 녹여낸 거다.

‘비트’부터 ‘아수라’까지, 결국에는 끝까지 인물들을 내몰고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 90년대 중반 ‘비트’를 찍을 땐, 어른들이 자신이 원하는 아이들을 만들려고 그들을 벼랑 끝으로 떠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아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계속해서 떠밀리고 있다. 사람들이 제게 영화의 의도를 묻는데 사실은 정말 간단한 거다. 이 암울한 세계 속, 제가 느끼는 현실을 그대로 가져가려고 했다.

‘죽도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했겠다,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 사실 제 꿈은 전쟁영화나 정치영화다. 그걸 못해서 영화를 전쟁처럼 찍나 보다. 하하하.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불나방 같은 정치인들과 권력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법을 구사하는 이들의 이야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