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기덕 감독이 말하는 ‘그물’의 운명
2016-10-07 07:00
10월 6일 개봉한 영화 ‘그물’(감독 김기덕·제작 김기덕필름·김기덕필름 NEW·배급 NEW)은 배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견뎌야만 했던 치열한 일주일을 담은 드라마다.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었으며 배우 류승범과의 첫 호흡으로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이데올로기에 갇혀 비늘이 벗겨지고 아가미가 찢어진 남자. 김기덕 감독이 던진 ‘그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전작에 비해 다가가기 쉽다는 반응이 많다. 15세 이상 관람등급도 오랜만이고
- 영화를 만들 땐 청소년관람등급을 받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물’은 애국주의를 깔지도 않았고, 양쪽 가해자들을 보여주는데 유해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이런 결정을 내려준 건 한편으로 그분들도 이 문제만큼은 청소년들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부분으로 인해 영화가 폭넓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6·25를 거치지 않은 세대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나?
- 이 영화의 근본적 초점은 청소년들이 아니라 기성세대,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치를 잘못했을 때 고통받는 이들이 누군지 의심하고 비난하고, 한 번 정도 물고기의 심정을 헤아렸으면 좋겠다.
‘그물’을 준비한 과정이 궁금하다
- 차츰차츰 수년간 써온 시나리오다. 류승범을 주인공으로 낙점하면서 살아난 시나리오인 셈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땐 결말도 정확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다. 철우(류승범 분)가 가족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오는 것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저쪽 체제를 거부하는 거니까 그것도 이기지 않나. 몇 가지 엔딩이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지금의 결말로 결정됐다. 운명인 셈이다. 과거 ‘피에타’나 ‘빈집’, ‘나쁜 남자’도 이런 식이었다. 촬영 직전 운명적으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감독님의 경험이 영화에 녹아들기도 했나?
- 당연하다. 모든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배경, 공간, 시간, 주변 인간들이 재료다. 저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해병대, 공장 생활 같은 것들이 제 영화에 충분한 재료들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로 인해 아버지의 불행을 고스란히 목격하며 적대감이 생기기도 하고.
말씀하신 대로 남한 조사관 역할에 그런 마음이 투영됐을지도 모르겠다
- 그럴 수도 있다. 극 중 남한의 조사관이 북한 사람들에 증오심을 갖는 건 일종의 압축된 캐릭터다. 제 캐릭터를 투영시킨 걸 수도 있다. 아버지께서 6·25에 참전해 총알 4발을 맞고 평생을 병상에 누워계셨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적개심을 조사관 캐릭터에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물’을 만들며, 김기덕 감독을 가장 괴롭힌 것은 무엇인가?
- 남한의 조사관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모든 사람이 이렇지는 않지 않나. 영화를 만들 때 그게 항상 딜레마다. 현상적인 사건을 봤을 때 그들은 총칭될 수밖에 없으니까. 모든 국정원이 이렇게 나쁘지 않을 텐데.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오해하게 되니까. 캐릭터들이 과격하게 그려지는 것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니 그걸 피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김기덕스럽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제는 하나의 형용사가 된 것 같다
- 제 영화에는 그런 점이 있다. 예컨대 ‘빈집’은 벽이 없고 문이 없다거나, ‘섬’은 좌대 하나하나 욕망이 떠 있는 모습이라거나. 그런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공간은 없지만, 숙명적으로 넣어야 하고 그런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그물’의 경우에는?
- 눈을 감는다는 행위가 그랬다. 철우가 서울에 도착해 눈을 감고 보지 않겠다며 공포심을 표현하는 것들. 명동에 풀어놨을 때도 아무것도 안 보려고 하고, 국정원들은 억지로 보게 하려고 하고…. 그게 이 영화의 포인트인 것 같다.
전작에 비해 결말이 더 절망적이어진 것 같다. ‘파란대문’이나 ‘사마리아’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는 어떤 연속성을 보여주었던 것 같은데
- ‘빈집’, ‘파란대문’도 이게 희망인가 한다면 잘 모르겠다. 희망보다는 화해라는 게 맞겠다. ‘그물’의 경우에는 확실히 절망으로 끝난다. 이건 우리가 직면한 문제기 때문에 개인을 이해하지 않으면 불행이라는 거다. 이 영화는 굉장히 마음 아픈 결론을 내리면서도 다음 페이지에 희망을 걸기 위해서 불행한 페이지를 마무리하는 거다. 다음 페이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말 이렇게 되길 원하느냐?’라고. 이전에 개인적인 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 관객과 해외관객의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충격을 받는 것 같더라. 대부분 ‘실제 남북이 이러냐’고 묻더라.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 여성 관객은 ‘영화가 슬프다’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어떤 비평가는 ‘정말 충격이다. 이야기를 확장하면서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냥 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북한의 편을 든다고 비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본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지 않나. 이건 어떤 역사의 이미지기도 하니까. 당연히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해외 관객들도 인간의 기본권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이해하고 동일하게 해석하더라.
류승범과의 호흡은 어땠나?
- 공평하게 배우도 나에 대해 칭찬도 좀 해야 하는데, 나만 너무 찬양하는 것 같고…. 하하하. 영화를 만들 땐 잘 몰랐다. 정신이 없으니까. 하지만 편집을 하면서 ‘많은 걸 고민하고 담아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책임감도 대단하고 에너지도 넘치더라.
배우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나?
- 저는 함께 작품을 하는 배우는 ‘운명’이라 생각한다. 부족하든 아니든 제가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배우를) 믿고 가야 하고, 믿을만한 구석이 없다면 캐릭터로 만들어야 한다. 감독의 숙제인 것 같다. 모든 배우가 다 잘했다 못 했다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아쉬움 또한 안고 가야 하는 것 같다.
22번째 장편영화다. ‘그물’로 인해 새로운 관객들이 감독님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 제 영화는 전부 다 다시 봐야 한다. 하하하. 저 역시도 제 영화의 관객이다. 다시 봐야 한다. 오래 지나서 만들었는지 망각하는 작품들도 있으니까. 어떤 때는 제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한다. 제 영화가 그런 면이 있다. 볼 때마다 다른 면이 보인다. 성장통과 만나서 새롭게 보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기존 팬들은 유해진 김기덕의 모습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더라
- 그렇더라. 하지만 그래 봤자다. 하하하. 내 마음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입고 싶은 의식의 옷을 입고 살아가고…. 제 모습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다른 쪽을 기웃거리시면 된다.
‘그물’은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작품으로 남길 바라나?
- 그런 마음은 없다. 만드는 순간 영화의 운명이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시나리오 상태에서 배우들하고 최선을 다하면 심장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심장의 에너지만큼 영화의 운명이 있는 것 같다.
운명이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들린다
- 사실 운명이라는 말을 풀어쓰자면 ‘될 대로 되라’라는 거다. 나름의 길이 있다는 거다.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 인간, 인류가 어떻게 지속하였는지 이 에너지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다. 이 에너지는 서로 좋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현대는 식인사회다. 실제 사람을 먹진 않지만, 자존심을 먹고, 이익을 먹고 산다. 에너지의 운동 차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