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남한 유일의 단군 관련 공간 '참성단'

2016-09-02 09:48
우리 역사의 근원적 공간, 인천

아주경제 박흥서 기자 =인천 강화도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곳으로 전하는 참성단과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게 했다는 삼랑성이 있다.

단군의 주요 활동 무대는 평안도와 황해도로 단군 관련 유적은 주로 북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고려사』지리지 등 각종 사서와 지리서에 언급된 남한 지역 단군 유적은 참성단과 삼랑성뿐이다.

참성단은 원형으로 쌓은 하단 위에 방형의 제단을 둔 모양인데, 위의 네모난 것은 땅을, 아래의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이는 음양이 서로 교차하게 되면 조화를 이루어 만사가 형통한다는 의미로 해석 되고 있다.

참성에서 제사를 지낸 기록이 많이 전해지고 있어 참성(塹城)은 종교적 의례가 거행되는 장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성단의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참성단의 최초 기록은 『고려사』원종 5년(1264) 5월에 풍수사 백승현이 마리산 참성에서 초제 지내기를 건의하여 왕이 재초를 거행하였다는 내용이다.

참성단.[1]


이를 통해 참성단이 13세기 이전에 축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성단이 단군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왕실이 강화로 천도하면서 풍수도참가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 왕의 이름으로 국가에서 제사를 거행하던 장소였던 참성단의 제사는 강도시대(江都時代) 원종(元宗)이 직접 주재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관리가 국왕을 대신하여 제사했다.

제사는 정기적인 것과 비정기적인 것이 있었다. 정기적인 제사는 봄・가을에 거행되었는데, 주로 국가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비정기적 제사는 외적의 침입이나, 한발(旱魃)이 있을 때 수시로 거행되었다.

참성단제사를 지냈던 천제암궁지[1]


단군은 우리 민족과 역사를 인식하는 출발점이다.

참성단은 제천의식뿐만 아니라, 1955년 이후 전국체전의 성화를 채화해 왔고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성화도 채화하였다. 이러한 사실에서 인천이 우리 역사의 근원적 공간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