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박계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 "국가의 격 높이는 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넓어져야"
2016-09-02 06:31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2명 중 1명은 '투 잡'을 하고 있으며, 연간 평균 수입은 1255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예술인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통계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있었다. 지난 2011년 생활고에 시달리리던 시나리오 작가 고(故) 최고은씨는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쪽지를 이웃집 대문에 남기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으로 예술인복지법(일명 최고은법)이 제정됐지만, 이후에도 배우 판영진·김운하·우봉식 씨 등이 팍팍한 현실에 스러져갔고 지난 5월엔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시인 최영미가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 된 사실을 스스로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민원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노력 지속…"재단도 예술인 한 가족"
지난 2014년 10월 재단 대표로 취임한 그는 가장 먼저 조직 개편에 팔을 걷어붙였다. 사업팀과 기획팀 2개로 나뉜 직제를 4개팀(사업1·2·3, 경영지원) 1센터(예술인 복지지원)로 바꿨고, 홍보팀을 대표 직속으로 뒀다. 즉각적인 민원인 대응을 위해서는 피드백과 의사결정이 빨라야 하는데, 기존 조직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박 대표는 "조직을 세분화·전문화·효율화할 필요가 있었다"며 "사업별 팀제 운영으로 민원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고, 팀장·과장·대리 등의 직급에 관계없이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 8월 현재 재단은 정원 35명에 현원 19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 대표는 "이 부분이 조금 신경쓰이지만 올해 인건비 예산이 일정 부분 반영돼 조금 숨통이 트일 것 같다"며 구글의 인사 시스템을 거론했다. "구글은 특정 업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라 '협업'에 능한 사람을 뽑습니다. 재단도 앞으로 조직 내에서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계획입니다." 개개인의 평가에 집중하면 이들이 각자 내부에서 적을 만들고, 그러다 보면 조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이유에서다.
취임 후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박 대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대뜸 "왜 사람들이 주말에는 쉬는지 알겠더라"고 무릎을 탁 쳤다. 재단에 오기 전 비정부기구(NGO), 한국공연예술센터, 한국연극협회 등에 몸담았을 때는 평일·주말 없이 일했고 공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즐겁게 생각했는데, 재단에서는 민원 하나 해결하기 위해서 회의를 연거푸 열고, 문제가 있는 곳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녀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휴일엔 무조건 푹 쉰다"며 웃었다.
박 대표는 재단의 사업 확장, 예술계 불공정행위 개선 등에 있어서 "100% 만족은 못하지만 하나하나 단추를 꿰어 나가고 있다"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재단은 생긴 지 4년도 안 된 신생조직입니다. 제도라는 건 개선·보완해가면서 발전하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기다려주지를 않습니다. 사업을 시행하다 겪게 되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재단의 노력보다는 당장 완벽함을 바라는 일부 예술인들 때문에 복잡해질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모 예술인이 사망했을 때 예술계 일각에서는 "이게 다 너희 탓이다"라며 재단을 맹비난했다고 하니 박 대표의 넋두리가 일견 이해되기도 했다.
◆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많은 호응…'창작준비금' 지방 편중은 구조적 한계
재단은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농협중앙회, 한국메세나협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1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돼 보완 작업을 거쳐 올해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예술인들이 수출품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거나 산간오지 등 문화소외지역에서 예술창작활동을 벌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박 대표는 "개인적으로 무척 애착하는 사업"이라며 "자신들의 예술적 재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직무 능력을 개발하고, 기업은 이들을 통해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사업은 궁극적으로 예술인들의 가치를 확산하는 일"이라며 "이들이 기업·기관·지자체에서 일을 하면 예술 그리고 예술인이 뭔지 모르는 일반인들도 이들의 가치를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베짱이의 노래도 엄연한 '노동'이라는 것을 사회에 각인시킨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예술 활동을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가'라는 반발과 논란을 불식시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기업 대다수는 이 사업이 조직문화 개선 등에 상당한 효과를 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들에게 그 활동에 걸맞은 '정식'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6개월간 같이 작업을 하다 보면 이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고, 이것이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새로운 '창업'의 물꼬를 터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대표는 "기업 문화를 '이상하게' 물들인다고 예술인들의 출입을 금기시하는 곳들도 물론 있지만, 어쨌든 예술인들은 이 사업을 통해 '생산적 컬래버래이션'을 꾀할 수 있다"고 평했다.
재단은 최근 '창작준비금' 지원제도가 수도권 예술인들에게 편중됐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창작지원금뿐만이 아니라 재단의 거의 모든 사업이 동일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활동 증명'을 거친 '법적' 예술인들의 78% 정도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대한민국의 모든 예술인들을 같은 '조건'으로 대해야 하는 재단 업무 특성상 결과적으로 수혜 대상이 수도권에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국회의원도 수도권이 제일 많은 것과 비슷하다"며 "관객들이 지하철로 손쉽게 이동해 서울의 공연을 보는 경향을 고려한다면, 인천과 경기도의 예술인들은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 예술인들의 자존심 꺾지 않는 실질적 지원 제도 필요
지난달 22일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은 예술 활동 '증명'을 '등록'제로 바꾸겠다는 내용을 담은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쉽게 말해 예술인 눈높이에 맞는 복지제도를 설계하겠다는 취지다. 박 대표는 "이는 사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증명제에서는 신청 예술인의 주민등록상 1촌 직계까지의 소득을 다 검토하게 돼 있다. 내가 돈을 못 벌어도 가족이 직업 또는 소득이 있으면 지원을 못 받기 때문에 증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술인들을 지탱하는 것은 자존심인데 '증명'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반감도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오 의원의 개정안에는 '서류 간소화'의 내용도 담겨 있다. 지금도 재단 직원들은 일 년에 수백 곳을 찾아다니며 예술인들의 증명을 도와주는데, 이들이 재단에 지원 신청을 하려면 많게는 11개의 서류를 내야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예술인들은 자신들을 위한 지원 사업 목적으로 재단이 국가 범정부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동의서 한 장에만 서명하면 된다. 박 대표는 "'복지'라는 단어는 '구휼'이 아닌 '행복'이 돼야 한다"고 이 개정안의 통과를 바라고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박 대표가 생각하는 예술인의 미래가. 그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예술인들은 상대적으로 늘 춥고 배고팠다. 예술활동만으로 밥벌이 할 수 없는 사회구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은 국가를 비롯한 공공의 영역에서 예술을 보듬어야 하는데, 아직은 사회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재단이 필요없는 세상이 와야 예술인들이 비로소 기지개를 펼 것"이라며 자치단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예술인들은 해당 지역의 보물 아닌가요? 예술인 복지 조례를 만들어 예산을 확보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 됩니다. '예비 예술인'들만 대상으로 하는 곳도 있는데, 예술하는 사람은 다 예술인이지, 굳이 '예비'자를 붙여서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마지막으로 '뻘'(개흙) 이야기를 꺼냈다. "뻘이 있어야 낙지도 살고 조개도 삽니다. 뻘을 보존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낙지젓부터 팔 생각을 하면 되겠습니까?" 문화는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하고, 기본 토대 없이 콘텐츠만 들이대면 '문화융성'은 없다는 그의 예술 철학은 뻘처럼 진득하고 넓게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