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일명 “오늘자 개판이 된 사과축제.jpg” 그 뒷이야기 (종합)

2016-08-31 01:10

일명 “오늘자 개판이 된 사과축제.jpg” 그 뒷이야기 (종합)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본]


아주경제 유대길 기자 =아주경제신문 영상사진부 소속 유대길 사진기자입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3년 차에 들어설 동안 제 기사 하나가 이렇게나 큰 이슈를 불러일으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슈만큼이나 제가 범한 큰 오류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면서 그저 묵인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취재현장 뒷이야기를 써보자 합니다. (굉장히 긴 자기반성 내용이므로 요약본은 맨 밑으로 내려가 보시면 됩니다.^^)

우선 이날 열렸던 행사는 3일 후면 열리는(30일 기준) 전라북도 장수군의 유명 행사인 ‘제10회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습니다.
장소는 광화문 청계광장으로 행사 시작은 11시 30분에 시작 예정이었으나 저는 “간단하게 취재하고 얼른 점심 먹어야지”라는 생각으로 11시 정각에 도착, 현장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느 정도 행사 준비가 시작되자 바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행사는 수조(욕조) 안에 떠 있는 플라스틱 사과모형을 나무 숟가락(막대기)으로 건져서 안내도우미(백설공주)에게 주면 진짜 장수사과 하나와 교환해주며 홍보를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부터 시민들이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그에 따라 초반에는 사람들이 질서를 지켜 줄을 지어 대기 하였고 저는 취재협조에 호응을 잘 해주는 외국인과 어린 아이들 위주로 먼저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한 외국인 가족이 이벤트를 체험하고 있다. (사전 협조)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 외국인 어린 친구를 찍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무난한 사회일정이었습니다만...
 

한 외국인 어린이가 자신이 직접 건진 사과를 자랑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마침 공식 행사가 시작되는 30분이 임박하자 타 매체 사진기자 선배들이 도착하였고 이에 따라 행사장 도우미들이 별도의 언론용 포토타임, 일명 그림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을 잠시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는 사진기자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그 순간 갑자기 고성이 들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사과주는 거 그냥 줘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
 

취재진이 모이자 술렁이기 시작하는 시민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그 순간 뒤에서 대기 중인 시민들이 하나둘 갑작스레 앞으로 나오게 되었고 앞에 줄 서 있던 시민들까지 합세해 사과교환대에 놓여있는 사과들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정말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사과들이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떨어진 사과들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사과가 놓여있던 테이블이 엎어지면서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행사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순간 고민했습니다. ‘하.. 이걸 찍어야 하나? 남의 좋은 취지로 하는 행사인데... 게다가 초상권 문제는 어떡하고..’
 

아수라장 속 사과를 가져가는 시민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고민이 끝난 건 어느 한 어르신이 양손에 사과를 들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몰라 일단 지면에 쓰던 말 던 찍고 보자 어차피 유통일정도 아니고 사회일정으로 취재 온 건데 이것도 사회라고 하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기사 메인 사진으로 올라간 사진[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행사 도우미들은 흥분한 시민들을 진정시키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며 쓰러진 테이블을 다시 정상적으로 복구시켰고 정말 순식간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조용했다.
이곳이 방금까지 아수라장 현장이었다고 알 수 있는 모습은 그저 하나.. 찢긴 홍보 포스터 한 장뿐..
 

난리통에 찢겨진 포스터[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현장 도우미들이 어느 정도 현장을 정돈하고나서야 기자들을 위한 포토행사가 시작되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욕조 안에는 가짜 사과들이 있었는데 진짜 사과를 사용하면 체험은 안 하고 손으로 집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점과 실제 사과가 너무 무거워서 체험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유로 플라스틱 사과를 사용했다는 얘길 관계자를 통해 들었지만, 현장에 있던 모든 사진기자는 “사진 행사에서 만큼은 진짜 사과들이 같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만장일치의 의견이 있어서 행사 운영 관에 있던 사과 1박스를 개봉해 욕조에 부었습니다.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취재 시작이지만.. 이미 다들 진이 빠져있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마침 주변을 지나던 일반 여성분들과 아이를 급 섭외하여 한우와 사과, 백설공주와 함께 체험하도록 연출을 하였고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사과를 욕조에 넣는 순간에도 사과는 쥐도 새도 모르게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이땐 그저 그러려니 하고 여성분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했습니다.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고 한 5분 정도 지나 더 이상의 그림이 안 나와 사진기자들이 셔터를 멈추기 시작했고 주변엔 아까 사과를 얻지 못한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진기자 선배가 “이제 그만 찍자”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민들이 욕조에 빠질 기세로 달려들며 사과를 가져갔습니다.
 

몰려드는 시민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사실 이때부터 저는 “그래 기본적인 사진 먼저 기사 송고하고 나중에 추가 촬영은 영상으로 해서 종합기사를 내보내자”라고 생각하고 더 집중적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행사의 취지는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사과를 챙겨가는 어르신들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물론 저희가 취재 올 때부터 생각한 길게 줄 서 있는 시민들을 배경으로 즐겁게 사과를 낚는 장면을 망친 점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너무 깊이 파고 들어 물에 흠뻑 젖은 시민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사진 취재를 마치고 영상 취재를 할 찰나 뒤늦게 합류한 사진기자 선배들이 장소를 바꿔 추가 촬영을 요청하였고 저는 기회다 싶어서 이번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타날 테니 끝남과 동시에 영상을 찍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두 번째 새로운 일반 시민들을 모델로 촬영이 시작되자 저희 뒤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모든 제 실수의 시작이자 정점이 될 줄은 모른 채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포즈 취하는 감사한 시민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번에도 역시 촬영 종료를 선언과 동시에 모두가 달려들어 사과들 집어 들었고 저는 영상을 뒤에서 찍었습니다. 
 

원안에 한 어린아이가 무방비한 상태로 한 시민의 팔꿈치에 머리를 부딪쳤다 [유튜브 영상 캡쳐=유대길 기자 dbeorlf123@]


역시나 제가 생각하던 그림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재현되었습니다.

간단한 사회스케치라고 생각한 일정이 힘겨운 일정이 되었고 뒤이어 정부청사에서 ‘2017년 예산안 관련 합동브리핑’ 취재를 마치고 나서야 시간적 여유가 생겨 사진을 선택해 작업하고 동영상 편집기를 이용하여 유튜브 동영상을 만든 후 종합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여기까지가 40분 동안 청계광장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한 취재현장입니다. 이제부턴 자기반성의 글입니다.

종합 기사의 골자(뼈대)는 무질서한 시민의식으로 전반적인 모든 내용이 비난을 이어가고자 제목 역시 시선 집중시킬수 있게 '(분노주의)'라는 표현을 선택했고 굳이 안 써도 될 ‘한국’이라는 단어를 넣어 제 기사를 읽을 독자들, 그리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캡처된 제 기사를 보는 많은 사람에게 이상한 편견의식을 제공하는 빌미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 사진을 찍었다는 점과 다른 사진기자들이 기사송고를 안한 사진을 기사 송고한 점, 그리고 영상을 만들어서 배포한 점에 대해서는 한 치의 연출 없이 사실 그대로를 나타냈기에 당당합니다.

다만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은 내용과 고치고자 하는 내용은 제목에 굳이 ‘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작업한 동영상에서 분명히 중국어가 들리는 데도(즉 아수라장이 일어난 현장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있었다는 점을 간과함) 한국 어르신들’ 이라는 반어법적인 조롱 어투로 모든 대상을 한국 어르신으로 단정 짓고 독자들에게 오해를 산 점입니다.

또한, 의도치 않게 제2의 피해를 보게 될지도 모르는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 관계자들에게도 사과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는 취재현장에선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장면을 포착하고
기사 작성 및 기사 제목 선정에는 더욱 신중을 기하는
아주경제신문 유대길 기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질타 부탁드립니다. 



ps. 회사 시스템 자체에 댓글을 다는 코너가 있지만 활성화가 잘 되지 않아 지인들로부터 모든 카페 및 커뮤니티 댓글들을 캡쳐받아 모두 읽어봤습니다. 

제가 가장 재밌게 느낀 댓글은 "한우찡 당황스러워보여" 이고, 가장 가슴아팠던 댓글은 "기자새X가 한국이라고 단정지어 XXX한다." 였습니다.

또 회사에서 기사 사진을 보게 되면 쭈글쭈글하게 표현되어 굉장히 옛날 기사인줄 알았다는 의견이 많이 있어서..
혹시나 고퀄리티 기사 사진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따로 블로그를 열어 같은 내용의 기사를 포스팅 하였습니다. 

앞으로 [취재현장] 뒷이야기가 생길때마다 기사송고와 같이 블로그에도 반영하겠습니다.
너무 많은 커뮤니티에서 글을 퍼가셔서;; 취재현장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기자의 얼굴은 생략하겠습니다ㅠ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원 기사
http://www.ajunews.com/view/20160830170125198
(전에 작성한 기사는 기사 자체를 내릴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제목을 수정하였습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유튜브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l_5KlHTjwZE​
(비속어가 남발하는 관계로 댓글창을 닫았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충분히 욕 많이 먹었습니다ㅠㅠ)
 


▶그나마 고화질 사진이 첨부된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dbeorlf123/220800869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