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중국 슈퍼리치는 기업 경영시스템 설계사

2016-07-22 07:00
'입법'에 치중하는 G2, 판례에 얽매인 한국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헌법 개정 노력
'돈'보다 '제도혁신'에 관심갖는 중국 수퍼리치들

강효백 경희대학교 중국법학과 교수


-제도야말로 진정한 보스다.(制度才是眞正的老板) - 알리바바 총재 마윈

-일류의 집행은 반드시 일류의 제도가 있어야 한다.(一流的執行必有一流的制度)- 거리전기 총재 둥밍주

-보스는 천하를 제패하고, 제도는 강산을 확정한다.(老板打天下, 制度定江山)- 문협(文俠) 강효백

(마오쩌둥은 무력으로 대륙을 통일했고 덩샤오핑은 제도화로 G2중국의 초석을 확립했다.)



우리나라 대학생을 비롯한 일반인에게 ‘법’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물으면 재판, 판검사, 변호사 법원, 고소, 고발 등이 떠오른다고 답한다.

중국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제도, 법제건설, 규칙, 관리·감독, 입법 등이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법의 주류는 ‘재판’이고, 중국에서 법은 ‘제도’다. 이것이 바로 한국과 중국의 차이다. 한·중 양국의 종합 국력의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 '입법'에 치중하는 'G2'

시진핑(習近平)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국무원 총리, 리위안차오(李源潮) 부주석, 류엔둥(劉延東) 부총리 등 중국 최고수뇌부가 법학도 출신이거나 법학박사라 해서 그들의 원래 꿈이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인 또는 법학자였을까? 혹시 그들도 학창시절, 우리나라처럼 법조문과 판례와 학설을 암기하고 해석하는데 몰두했을까?

천부당만부당한 말씀! 중국의 법학은 제도창조학, 국가사회 시스템디자인학, 국가경영제도학, 즉 입법학이 주류다.

구 독일과 일본의 법학이 해석법학임에 반하여 21세기 미국, 중국, EU 등 'G3'의 주류법학은 사회의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제안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이다. 즉, 현대 국제사회의 주류법학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의 주류법학인 법해석학의 영역으로부터 발전하여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경영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은 물론 심리학, 인류학, 언어학, 통계학 기타 인접 학문 영역, 심지어 이공계와 예체능계의 연구방법을 다각도로 응용하면서 각각의 과정의 동태적인 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처방을 내리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세계 초일류 강대국인 미국의 헌법 제1조 1항도 우리나라처럼 ‘미합중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일까? 아니다.  '이 헌법에 따라 부여되는 모든 입법권은 연방 의회에 속하며, 연방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한다'이다(1)*. 원문으로 봐도 명확히 ‘legislative powers’라 하여 입법권이 명시돼 있다. 미국헌법, 그것도 제1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가 입법권이라니, 이러한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국회,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분립의 원칙 및 현실 등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G2의 한 축인 중국 법학계의 주요관심 분야도 개혁개방과 부국강병을 위한 ‘좋은 법 만들기’에 있다. 중국의 법학은 미래의 비전과 플랜을 법제화하는 제도 창조, 즉 입법학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서의 양대 주인공인 ‘판례’와 ‘해석’은 중국의 법서에서 엑스트라 취급당한다. 법의 제정과 개정 등 ‘입법’이 주연급이다. 중국헌법 제15조는 '국가는 경제 입법을 강화하여 거시조절을 완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2)*.

◇ 덩샤오핑과 나폴레옹의 공통점 

오늘 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숭앙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내세운 '선부론(先富論)'이나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 ; 한 개의 중국 내에 사회주의 자본주의 두 제도를 공존 공동발전을 모색한다)' 등 개혁개방 노선과 정책이 그저 구호로만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덩샤오핑은 자신의 개혁개방 이론과 정책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게끔 획기적인 제도적 장치를 창조해 이를 강력히 집행해 나갔다.

덩샤오핑은 1982년  헌법을 전면개정했다. 홍콩과 마카오의 원활한 회수 및 관리, 나아가 대만을 흡수통일하기 위하여 특별행정구 제도를 창조해 헌법으로 조문화했다(헌법 제31조). 1997년 홍콩 반환보다 무려 15년 앞서 미리 헌법차원으로 제도화해 놓은 것이다.

또 사회주의라는 붉은 바다에 띄운 자본주의라는 푸른 섬, 경제특구를 비롯해 외자기업의 장려와 보호를 헌법 조문으로 명문화하고(헌법 제18조, 제32조), 합법적인 사유재산권의 불가침권을 보장했다(헌법 제13조). 이밖에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에 대한 보호와 각종 특혜부여를 보장한 합자기업법(1979년), 외자기업법(1986년), 합작기업법(1988년) 등 이른바 '삼자기업법'과 사유재산의 축적을 보장한 상속법(1985년 제정)등을 헌법에 버금가는 기본법률 차원으로 제정·시행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영원한 명예는 40번의 승전이 아니라 자신의 법전이라고 말했듯, 그의 정치·군사적 업적은 덧없으나 나폴레옹 법전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덩샤오핑이 제정 수준으로 개정한 1982년 중국헌법(현행 중국헌법)도 그의 후계자에 의해 네 차례 일부 수정, 개선돼 오늘날 부국강병한 G2 중국을 이루는 기틀이 되고 있다. 덩샤오핑식 개혁개방 노선의 아이들인 장쩌민, 후진타오에서부터 현재 시진핑까지, 역대 중국 최고지도층도 개혁개방과 부국강병의 도구로서 좋은 법제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법, 행정, 입법 순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우수인력자원을 투입하는 반면에 중국은 입법, 행정, 사법 순으로 투입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당중앙 정법위원회와 베이징대학, 중국인민대학 등 명문대 법학원의 저명 교수진 등을 비롯한 국가 최고 엘리트들의 지력을 ‘좋은 법 만들기’에 집중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중 양국 간에 매우 뚜렷하게 대조되는 국가인력자원 포지셔닝(positioning) 전략 내지 인재배치의 현 주소다. 이 또한 한·중 양국의 종합국력의 격차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질주 비결은 구호나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도화해 강력히 집행하는데 있다. 중국은 각종 세법, 무역법, 투자법, 기업법, 지식재산권법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발히 법제개혁을 이뤄내고 있다. 중국의 법제개혁, 즉 제도화는 정부의 제도화뿐 아니라 기업 내부의 관리나 운영 방식도 포함한다. 국가적인 차원의 거시적 제도화나 기업적인 차원의 미시적 제도화가 ‘사회주의시장경제=공정한 자유경쟁’으로 나아가는 중국 질주의 근원인 셈이다.

◇ 중국 수퍼리치 "'돈'보다 '룰 만들기'에 관심"

신간 '중국의 슈퍼리치'에 등장하는 중국 대표 기업가들의 삶의 궤적을 돌아봐도 그렇다. 2016년 중국 최고 갑부이자 글로벌 슈퍼리치 18위에 오른 완다그룹 총재 왕젠린(王健林,)을 비롯하여 알리바바 총재 마윈(馬雲), 중국대표 여성기업가 거리전기 총수 동밍주(董明珠), 완샹그룹 루관치우(魯冠球) 회장, 신시왕 그룹 류융하오(劉永好) 회장, 바이두 리옌홍(李彦宏) 회장, 텐센트 마화텅(馬化騰) 회장, 샤오미 레이쥔(雷軍) 회장 등 중국 슈퍼리치의 공통적인 특징과 성공비결은 기업혁신의 시스템과 룰을 끊임없이 창조 개선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3)*.

중국의 슈퍼리치들은 진취적인 규칙 만들기를 좋아하고 그 규칙대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길 즐긴다. 이들 대다수는 창업 초창기의 돈 버는 즐거움보다는 끊임없이 기업발전을 위해 참신하고 효과적인 시스템과 룰을 창조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 자체에 무한한 즐거움을 느낀다. 자아실현이라는 정신적 쾌감의 절정, 성취감의 극치를 만끽하는 것이다.

오히려 융성해가는 자신의 기업과 두둑해진 돈주머니를 보며 느끼는 쾌감은 부수적이 되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도통의 경지에 오른 슈퍼리치도 관찰된다. 그러나 이들 중 간혹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창조와 혁신이 정상에 오른 후부터 자만과 타성, 권태에 빠져 기업경영의 시스템과 룰에 대한 이노베이션을 소홀히 할 경우는 이들의 기업도 여지없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쇠퇴일로에 접어드는 흐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감지된다.

요컨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확립후 현대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원활한 창업과 효율적인 기업경영을 위해 최적화된 법제 인프라 구축에 매진하는 ‘대사회시스템 디자이너(Grand Social System Designer)’고, 중국의 대표적 기업가 슈퍼리치들은 자신의 기업 발전을 위해 참신하고 효과적인 틀과 룰을 창안해내는 ‘기업경영시스템 디자이너(Company Management System Design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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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미국헌법 제1조 1항 원문은 이렇다. “All legislative powers herein granted shall be vested in a Congress of the United States which shall consist of a Senate and House of Representatives.”
(2)* 중국헌법 제15조 원문은 이렇다. "国家加强经济立法,完善宏观调控。"
(3)* 이를테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샤오미 돌풍의 비밀을 풀 때 사람들은 주로 높은 품질에 비해 가격은 매우 싼 ‘가성비’와 실용성에 주목한다. 물론 그런 부분도 중요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혁신적인 마케팅 시스템을 창조하고 실천한 데 있다.

[참고문헌]
강효백, 『중국의 슈퍼리치』, 한길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