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조물주 위에 건물주

2016-07-20 15:51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오늘은 부동산 관련 유행어들을 섭렵해보자. 우리나라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부족한 땅과 주택 등 부동산 관련 사업의 수익성이 다른 사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부동산 관련 유행어도 많았다. 서울의 강남 개발이나 수도권 신도시 개발 등의 부동산개발 바람을 쫓아다니면서 투기를 하는 여자들을 ‘복부인’이라고 불렀다. 신도시 개발 등으로 갑자기 떼돈을 벌어 부자가 된 농사꾼들을 ‘부동산 졸부’라고 부르며 질투했다.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는 인기지역에서 길거리에 임시로 설치한 복덕방을 ‘떴다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부동산 불패’, ‘강남 불패’라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의 강남에서 땅 투기, 주택 투기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는데 거의 들어맞았다.

유럽의 16, 17세기 절대 왕정시대에 널리 퍼졌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에 빗대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지권신수설(地權神授說)이란 신조어가 퍼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지권신수설이 유행하고, 땅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원시적이고 야박하다.

요즘 유행하는 부동산 관련 신조어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다. 건물주가 상가 임대차계약을 멋대로 해지하거나, 임대보증금이나 월세를 무지막지하게 올려버리거나, 권리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나가도록 건물을 리모델링해버리거나, 건물주 스스로 영업을 한다고 하면서 내쫓아버리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세입자의 피눈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슬픈 유행어다.

필자가 주말에 등산을 마치고 자주 들렀던 청국장 전문점이 어느 날 문을 닫고 이전해버렸다. 청국장에 오징어 숙회를 시키면 거뜬한 점심 한 끼가 되었던 박리다매의 착한 식당이었다. 그런데, 건물주가 월세를 1500만원으로 두 배 가량 올리는 바람에 그 식당 주인은 “건물주 좋은 일만 하기는 싫다”면서 억울하지만 한 블럭 떨어진 빌딩의 지하로 내려가 버렸다.

서민들이 먹는 청국장찌개를 팔아서 한 달에 1500만원의 임대료를 내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거기에 재료비, 인건비 등은 얼마나 더 들어갈 것인가?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하게 됐고 상가 세입자에게 5년 동안의 계약갱신권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건물주들이 이제 월세를 터무니없이 올려 버리는 등의 수법으로 임차인을 괴롭히고 있단다.

세입자가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다른 가게에 없는 새로운 메뉴를 고안해내고 차별화된 고객감동의 서비스를 개발해내는 등의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가게가 안정되고 돈을 벌게 됐다면 격려하고 칭찬해줘야 한다. 열심히 노력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격려는커녕 냉큼 월세를 올려서 세입자의 힘든 노력의 대가를 건물주가 싹둑 잘라가 버린다면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

그래서 ‘지권신수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유행어가 나돌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조가 지속된다면 누가 열심히 노력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려고 할 것인가? 누가 창조경제를 책임지고 일자리를 만들려고 고민할 것인가? 불로소득자가 최상의 권력으로 추앙받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단 말인가?

고구려 고국천왕 16년 서기 194년 가을에 흉년이 들자 보관해 둔 창고를 열어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쌀을 나눠주도록 하여 백성을 구했으며, 봄에 곡식을 나눠주고 가을에 갚도록 했다고 한다. 이것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진대법’(賑貸法)의 기원이다.

그런 미풍양속이 1800년 전에도 있었는데, 어느새 21세기 대한민국이 강자가 약자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실을 빼앗아가는 염치없는 나라가 돼 버렸단 말인가? 자유시장경제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미국의 뉴욕에도 공정한 임대료 제도가 정착돼 있다.

건물주와 세입자, 공익위원 3자가 모여서 합의해 물가상승률 안팎의 적정한 임대료 인상률을 권고한다. 독일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로 세입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잘 정비돼 있다. 우리나라도 ‘조물주 위의 건물주’를 다시 조물주 밑으로 끌어내리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