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골프의 전설’ 박세리, US여자오픈 끝으로 18년 투어생활 마무리
2016-07-10 12:21
1988년 ‘맨발 샷’으로 국민들에게 용기 줘…‘세리 키즈’ 낳고 한국·세계골프 판도 변화시켜…8월 리우올림픽에서 국가에 봉사…“선수로 성공했으나 인생은 외로움의 연속”…국내 들어와 두 대회 출전한 후 연말 은퇴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틴의 코르데바예골프장 18번홀 그린.
US여자오픈 2라운드를 마친 한 선수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커트탈락한데 대한 아쉬움 때문은 아닌 듯했다. 18년동안 자신의 청춘을 보내고, 한국 및 세계 여자골프의 판도를 변화시킨 박세리(하나금융그룹)의 뜨거운 눈물이었다.
박세리는 이번 대회 첫날 73타로 50위권에 올랐으나 둘째날 8오버파 80타를 친 후 짐을 싸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음 대회장으로 향하는 짐이 아니라, 곧바로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집으로 향하는 짐이었다. 이번 US여자오픈이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로는 그의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이다.
박세리는 미국 무대 진출 해인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워터해저드에 빠진 볼을 치기 위해 맨발로 들어가 샷을 날리며 우승을 했고, 이 모습은 IMF(국제통화기금) 체제에 신음하던 한국 국민들에게 큰 힘을 줬다. 박세리는 “내 우승 이후 한국에서는 특별한 스포츠로 인식됐던 골프가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후배들이 미국LPGA투어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미국LPGA투어 데뷔연도에 메이저대회에서 2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킨 박세리는 2010년 벨마이크로클래식까지 미LPGA투어에서 25승(메이저대회 5승 포함)을 올렸다. 이는 한국선수 뿐 아니라, 아시아 선수로 미LPGA투어 최다승이다. 1998년엔 투어 신인상, 2003년엔 최소타수상을 받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07년에는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미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박세리는 미LPGA투어에서 치른 여섯 차례의 연장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정신력도 강했다.
박인비(KB금융그룹) 최나연(SK텔레콤) 전인지(하이트진로) 등 현재 미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 대부분이 박세리의 우승 장면을 보며 골프 선수가 됐다.
미국의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은 박세리의 위업을 ‘골프의 전설’ 아놀드 파머(미국)에 견줬다. 동료 선수 스테이시 루이스는 “만일 한국과 아시아의 TV 중계권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미LPGA투어는 4∼5년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며 “아시아 시장이 커진 이유 가운데 박세리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평가했다. 박세리와 함께 1998년 투어에 데뷔했다가 지금은 미LPGA투어 임원으로 일하는 헤더 델리 도노프리오는 “박세리는 한국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태국 일본 중국 선수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골프 선수로서는 성공했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받는다. 박세리는 “우승한 뒤 다음 우승을 생각하고 다른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생활이 반복됐다”며 “숙소에 돌아오면 외로움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골프장에서는 경기에 집중해야 하지만 골프장을 벗어나면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하라”고 후배들에게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박세리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20일께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그리고 8월 리우올림픽에 한국여자골프 코치로 참가한다. 올림픽 골프는 개인전이지만, 그가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뜻깊은 무대다.
올림픽 후 연말 현역 은퇴를 할때까지 박세리의 일정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는 9월 열리는 KLPGA투어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과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미LPGA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스폰서가 주최하는 하나은행 챔피언십은 박세리의 현역 마지막 대회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