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마음을 전하는 방법

2016-06-29 11:16
칼럼니스트(문학박사)

가산 이효석 문학관 주변 평창군관광안내센타 옆 물레방아[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9살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차립니다. 알 수 없는 '무국적'(無國籍) 퓨전 요리를 합니다. 냄비를 꺼내서 물을 넣고 끓입니다. 무도 썰어서 넣고 파도 손으로 잘라서 넣습니다. 비닐팩에 들어 있는 각진 고기도 몽땅 넣고, 고춧가루도 잘 찾아서 넣습니다.

소금인지 설탕인지 모르지만 하얀 조미료도 잔뜩 넣고 '아름다운' 국을 만듭니다. 아이가 아슬아슬하게 국을 따르고 옮깁니다. 신통방통하게도 요리를 참으로 일찍 끝냅니다. 아이가 다 차려놓은 아침 밥상을 보고 부모는 놀랍니다. 너무나 흉내를 잘 냈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부엌과 달리 식탁은 밥, 국, 수저, 김치 네 가지로 단촐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저를 들고 국물을 맛보기 전에 짠 내음이 코를 찌릅니다. 소금 소태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마음이 상할까 엄마는 맛있게 남김 없이 먹습니다. 그나마 양이 적은게 다행일 따름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부모의 마음이 있습니다. 간혹 마음이 상하면 아이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울고 생떼를 쓸지도 모릅니다.
 

가산 이효석 문학관 내 당나귀 둘(메밀꽃 필무렵에 나온 당나귀)[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50세를 넘긴 중년의 아저씨가 새벽에 일어나 부엌으로 향해 혼자 뭔가를 만듭니다. 물도 끓이고 무도 넣고 파도 넣고 고기도 넣고 고춧가루도 넣어서 국을 만듭니다. 아마도 소고기뭇국인 듯합니다. 남편이 차려놓은 아침 밥상을 보고 부인은 조금 기뻐 놀랍니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뿐입니다. 국은 소금소태로 먹을 수가 없을 정도도 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마음을 상할까 맛있게 남김없이 먹습니다. 양이 많아서 매우 고역스럽지만 그래도 후춧가루만 남겨두고 국그릇을 비웁니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한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마음이 상하면 남편은 자기 마음도 몰라준다고 하루동일 왕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폭언을 하고 심지어 물건을 던져서 깨거나 폭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화가 며칠을 가기도 합니다.

그 9살 아이가 50살의 중년 남자가 되었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내는 낮에 있을 가족행사에 시댁 부모님과 가족들을 대접하는데 쓰려고 재료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전날 날씨가 무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해서 장만했습니다. 없는 시간과 돈을 들여 남편도 도와주지 않는데 혼자서 낑낑거리며 무, 파, 고기 등을 사다놓고 다듬어 놨는데, 남편이 아침에 큰 사고를 친 것입니다. 다시 장도 봐야 합니다. 시간도 없고, 아이들 학원비 대느라 돈도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소홀했던 시부모님 잘 모시려고 소고기는 일부러 한우 1등급플러스로 사왔습니다. 주머니 사정상 아무래도 다시 살 엄두가 나지 않은 고가의 품질입니다.
 

물레[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누구나 '잘 하려고' 해서 생긴 일입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마음만 소중하다고 짜증내거나 화내고 울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기심일 따름입니다. 상대를 위해 만든 음식이라면 반드시 맛있어야 합니다. 아니, 맛있는 것을 맛있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사고를 치면 국을 다 먹고 며칠 후 조용히 아이를 일깨워줘야 합니다. '우린 먹지만 다른 사람은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해야 합니다. 아이의 기를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만 아는 아이를 만드는 것은 더 나쁘기 때문에 꼭 그래야 합니다. 잘만 전하면 현명한 어린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위하려는 마음만 있고 방법을 모르는 것은 '자만'으로, 지독한 이기주의일 뿐입니다.

적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게 공중규범이며 오직 가정 내에서 부모나 어른이 가르쳐야 할 덕목입니다. 요즘은 부모가 직접 해야 할 교육을 학교나 정부 탓으로 돌리는 '막무가내' 어른들이 늘어서 안타깝습니다만, 대부분의 '막가파' 어른들은 모두 9살 아이의 시절을 경험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몸만 큰 아이'가 됩니다.

판단과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혹시 본인이 막가파 어른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 말이 맞다고 우기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나 어른의 잘 하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방법과 순서도 좋아야 함을 일깨워주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매우 쉽습니다.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면 됩니다.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요리를 하고 싶구나! 고맙다"라고 칭찬하고 차근차근 방법을 가르쳐주면 됩니다.
 

물레방앗간 내부[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그렇습니다. 마음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온전하게 그대로 전하는 방법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교육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임종시에 수제자인 가섭에게 "너는 네 제자들에게 내가 말한 말을 전하지 말고 말한 방법을 전하라"고 말한 듯합니다. 

여러분이 쉽게 생각하는 그 '평범한' 요리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한 마음과 함께 맛있게 만들기 위해 수십 년간 고생해서 터득한 것입니다. 그것도 몰라주고 거꾸로 자기 마음만 생각해서 이기적으로 "내 마음도 몰라준다"고 울거나 화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사회가 언젠가부터 배려와 양보 그리고 나눔을 상실하고 흉측하고 징그러운 '이기적 사회'로 변한 것은 아마 이런 이유도 있는 듯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식이 소중하신가요? 그럼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전하세요. 그게 교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