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브렉시트, EU 그리고 닭갈비

2016-06-22 13:36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EU가 닭갈비 신세다. 먹을 것은 없고 남 주기는 아까운 계륵 같다. EU를 떠나자니 5억 명에 달하는 큰 시장을 잃을 것 같아서 아쉽고, 남아 있자니 각종 규제와 분담금에 시달리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난민도 받아야 한다. 귀찮은 일이 이만저만 아니다. 브렉시트 투표를 앞둔 영국의 심사가 꼭 이와 같다.

우리 경제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팎으로 어렵다. 대우조선해양을 필두로 그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던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조선업 뿐만 아니라 철강, 석유화학 등 중국과 경합하고 있는 산업도 비슷한 실정이다. 그 다음은 건설업과 금융업이 대기하고 있다. 소위 잘 나간다는 전자나 자동차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는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경제 전반에 걸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나라 밖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6월 23일에는 영국이 43년만에 EU를 떠나느냐 마느냐가 판가름나는 ‘브렉시트’ 투표가 예정돼 있다. 영국은 우리나라 수출의 1.4% 정도를 차지해 우리 경제에 직접적으로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통해서 다시 우리 경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실물경제에 주는 파장도 적지 않다.

금융시장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외환시장이 개방돼 있는 우리의 경우 브렉시트의 파장은 실물경제의 경우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리고 우리 증시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비중은 30%에서 35% 수준이다. 그 외국인 중에서 영국자본의 비중은 8.4% 정도다. 게다가 브렉시트가 현실화돼 외국인들이 보다 안전한 달러화 자산이나 엔화 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한국을 빠져나간다면 우리 증시의 주가지수는 금방 1,800선까지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브렉시트 투표가 부결돼 영국이 EU에 잔류한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브렉시트 투표를 초래하게 했던 영국 내부의 보호주의 물결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대한 미국’을 내세운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안에서도 보호주의 물결이 거세다. 올해 연말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당선되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든 거대한 보수화의 흐름, 자국 보호주의의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한 때 세계화와 개방을 주도했던 미국과 영국이 거꾸로 고립주의와 보호주의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주의의 흐름에서 가장 크게 피해를 볼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로서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의 특성상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들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의 물결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이럴수록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산업 구조조정에도 박차를 가하고 더 근본적인 수술을 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다. 정부와 국회, 대기업과 중소기업, 여야를 막론하고 하나로 힘을 모아 나라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아울러 미국과 영국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를 불러일으켰던 내부의 불평등 심화, 일자리 부족 등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우리 내부의 소득 불평등과 불합리한 차별을 최소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가고, 불필요한 규제를 개혁해 투자를 일으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어려움을 미리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책을 세워나가는 선견지명의 리더십이 국회와 정부, 업계와 노동계 등 각계각층에서 발휘돼야 한다. 방심하는 순간 눈앞의 쓰나미처럼 덮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건 무책임하다. 그때는 너무 늦다. 1997년의 국가 존망의 위기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우리 경제가 처한 딜레마를 뛰어 넘으려면 뭔가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브렉시트’의 위험성을 걱정하면서, 동시에 10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현명한 지도자들이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