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떨어지는 전장에 울려 퍼진 따뜻한 클래식 선율

2016-06-20 16:47
6·25 참전 세계적 피아니스트 美 세이모어 번스타인, 23~28일 방한
40여년 만 방문에 전우들 위한 특별공연도

6·25 전쟁 당시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미해병 1사단 장병들을 위해 연주하는 모습.[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세이모어 번스타인[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아주경제 박준형 기자 = 지난 4월 개봉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는 미국의 천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89)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1927년 미국 뉴저지주(州)에서 태어나 3세 때 처음 건반을 치기 시작한 번스타인은 15세 때부터는 남을 가르치는 수준에 올랐다. ‘호소력 있는 피아노 독주’, ‘피아노를 정복한 피아니스트’ 등의 찬사를 들으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1977년 돌연 무대를 떠나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사의 길을 걸었다. 그의 저서 ‘자기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은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필독서로 유명하다.

번스타인의 이력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바로 6·25 전쟁 참전용사라는 것이다. 1950년 12월 7일 군에 입대한 그는 14주간 보병훈련을 받고 이듬해 4월 24일 한국전에 파병됐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미 8군 소속으로 참전한 번스타인 일병의 임무는 위문공연. 그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총 대신 악기를 들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겸 군인이었던 케네스 고든과 함께 병원선에서 공연하는 등 최전선에서 100여 차례에 걸쳐 공연을 진행했다. 그의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은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군인들에게 큰 위안과 용기가 됐다.

그는 “최전방에서 개최된 공연들은 언덕 밑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배치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며 “군인들은 언덕 경사에 앉았고 언덕 밑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으며 포탄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공군들이 언덕을 넘어 비행하며 우리를 지켜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6·25 전쟁 당시 대구에서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공연을 위해 피아노 조율사 고용 등 도움을 준 한국인 이은혜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사진=국가보훈처 제공]


그는 최전방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을 위해 서울과 대구, 부산 등에서도 공연을 열었다. 서울교향악단과의 협업을 비롯한 각종 특별공연은 전쟁의 아픔을 겪던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잠시나마 위로가 됐다. 그는 1년 6개월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후 1952년 11월 8일 전역했다.

6·25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와 한국의 인연은 계속됐다. 1955년 당시 서울교향악단 지휘자였던 존 S. 김의 초대로 방한, 콘서트를 열었으며, 1960년에는 미 국무부 후원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콘서트 계획이 모두 취소됐고 대신 그는 이승만 정권에 항거하다 다친 이들이 입원해있던 서울대병원에서 연주했다.

그는 “당시 서울대병원으로 피아노를 옮기고 미국이 다친 학생들의 편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연을 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았다”며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해 연주한 모습이 세계 각국에 방영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23~28일 40여년 만에 또 한 번 한국을 방문한다. 이번엔 유엔 참전용사 70여명과 함께다.

이들은 6·25 전쟁 66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판문점 방문,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전쟁기념관 헌화 등 방한 기간 소중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번스타인은 6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전우들에게 전쟁 당시 용기와 위안을 줬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선물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