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구조조정] 조선 3사 10조원 자구안에 정부·한은 12조원 긴급수혈

2016-06-08 15:26
정부·한은 이견 좁히며 전방위 구조조정 시작
민간기업 구조조정에 혈세 투입 비판도

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정부와 한은이 구조조정 실탄 마련을 위해 총 12조원 규모의 국책은행 직·간접 출자를 추진하고,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는 10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내놨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는 기업 부실관리 책임을 물어 임금삭감과 인력감축 등 고강도 쇄신안도 추진된다.

그동안 구조조정 재원 마련 방식을 놓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던 정부와 한은이 대안 마련에 성공하면서 전방위적인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그러나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재정과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키로 하면서 민간기업의 부실을 혈세로 메우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도 안 되지만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을 병행해 당분간 지속될 구조조정의 대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 조선 '빅3' 자구안 마련…'폴리시 믹스'로 마련된 실탄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는 10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8일 발표한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에서 대형 조선사에 대해 "최악의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자구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업 '빅3'가 위태로워지면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일단 각사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한 이후 조선업 재편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자구안을 통해 현대중공업은 3조5000억원, 삼성중공업 1조5000억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3조5000억원의 추가 계획을 내놔 총 5조3000억원의 자구안을 마련했다.

조선업계를 비롯한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와 한은은 재정과 통화의 '폴리시 믹스(policy mix·정책조합)'로 구조조정 실탄을 마련하는 데 합의했다.

우선 정부가 오는 9월 말까지 공기업 주식 등 1조원 규모로 수은에 현물출자하고, 내년도 예산에 산은·수은 출자 소요를 반영하는 등 직접출자를 통해 자본확충에 선도적 역할을 하기로 했다.

한은은 11조원 한도의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지원이 필요할 때마다 재원을 마련하는 '캐피털 콜' 방식으로 운영하는 보완적 역할을 맡는다.

◆ 조선ㆍ해운 위험노출액 70조원 달해…국민 혈세 투입 논란

금융계에 따르면 해운사와 조선업에 대한 은행권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는 70조원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이 22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중공업(14조6000억원), 삼성중공업(13조1000억원) 순으로 조선업계 '빅3'의 은행권 채무는 50조5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중견업체인 현대삼호중공업이 5조1000억원, 현대미포조선도 4조4000억원에 이른다.

STX조선의 경우 국책과 특수은행을 중심으로 5조5000억원 상당의 익스포저가 있다.

양대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익스포저는 1조8000억원가량이며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창명해운은 5100억원 수준이다.

은행권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에 대한 충당금으로 3조원가량을 적립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1조5000억원, 수출입은행은 6000억원 가량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은행권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창명해운에 대한 충당금도 수천억원 이상 더 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 조선·해운업종에 대한 부실대출로 자본확충이 필요해지면서 결국 정부와 한은이 직·간접출자에 나섰기 때문에 민간은행과 국책은행이 떠안은 민간기업의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해 오는 9월 말까지 보유하고 있는 공기업 주식을 수은에 현물출자하고 내년 예산안에 국책은행 자본 소요를 반영키로 해 나라 살림살이에 쓰여야 할 돈까지 민간기업 부실을 메우는데 동원된다.

한은 역시 대출 방식으로 자본확충펀드에 참여하는 것도 결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에 추후 손실이 발생할 경우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부는 현재 조선 및 해운업계 구조조정의 시급성 때문에 혈세 투입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엄정한 고통분담, 국책은행의 철저한 자구계획 선행 등을 통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조선·해운사에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요청하는 한편 국책은행의 인력·조직 축소 등 쇄신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시급성에 밀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정부 때 산은을 투자은행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인해 산은이 투자은행과 정책금융 두 가지 기능을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산은 출신이 자회사에 내려가는 등 도덕적 해이와 경영실패가 초래됐다"면서 "혈세 투입에 대한 책임문제는 결국 산업은행의 문제인데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산은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