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드’ 공방전에 묻혀 버린 대북제재

2016-06-06 13:29
샹그릴라 대화 폐막…미중 치열한 신경전 속 우리 정부 전방위 북핵 군사외교
“패권 다툼에 휘둘리지 않는 고도의 전략 필요한 시점”

아주경제 박준형 기자 = ‘제15차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가 폐막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샹그릴라 대화 사상 최초로 북한 문제가 별도 주제로 다뤄지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북핵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를 기대했던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성과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회의로 평가된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번 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전방위 북핵 군사외교를 펼쳤다. 한 장관은 한미, 한일, 한미일 국방장관회담을 비롯, 중국과의 양자대담, 본회의에서의 주제연설 등을 통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을 강력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동참을 촉구했다.

한 장관은 주제연설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어떤 입장 표명 없이 대화를 제의한 것은 진정성이 결여된 위장 평화공세에 불과하다”며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대북공조를 와해시키고 견고해지고 있는 제재의 틀을 이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과의 회담에서는 대북 제재가 제대로 이행되도록 긴밀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중국 부총참모장과의 양자회담, 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과의 개별 대담, 스위스, 프랑스 국방장관과 양자회담에서도 북핵 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진전된 형태의 군사적 대북 제재 조치는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에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우리 정부가 최대 이슈로 부각하려던 북핵 문제는 뒤로 밀렸다.

미중은 이번 회의 기간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한 기싸움을 펼쳤다. 미국은 한미 장관회담에서 사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사드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한 장관은 이번 회의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쑨젠궈(孫建國)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5일 기조연설에서 “사드는 지역의 안정을 잠식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배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쑨 부총참모장의 발언 이후 아나톨리 안토노프 러시아 국방차관도 기조연설에서 “한국과 미국의 미사일방어(MD) 협력이 전략적인 안정을 해쳐선 안 된다”며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는 중국이 미국의 대중 압박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한미일 대 북중러의 긴장 구도로 흘러갈 경우 대북 제재의 동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무엇보다도 미중의 패권 다툼에 우리 정부는 중간에 끼어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고도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중 패권 다툼에 휘둘리지 않도록 확고한 원칙을 세우면서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세밀한 조율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샹그릴라 대화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관으로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27개국 국방장관 등 안보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다자안보회의다. 매년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회의가 진행돼 샹그릴라 대화라고 불린다.

아시아안보회의 참석한 국방부 장관 (싱가포르=연합뉴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4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주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