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구조조정 삼국지]‘힘 빠진 박근혜’ 험난한 구조조정

2016-05-25 16:03
(4) 힘 빠진 박근혜 정부 동력 상실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구조조정은 시장원리에 따라서 기업과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전체 산업 관점에서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하고 고용, 협력업체, 지역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산업 구조조정과 관련, 정부 주도설에 선을 그으며 이같이 말했다.

산업 구조조정은 대상인 기업은 물론 정부나 정치권 모두에게 큰 부담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4.13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대패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성패가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와 희생에 좌우된다며 이를 위해 정부, 특히 국가수반은 의지를 갖고 지향점을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통령이 화두를 던졌으면, 그에 맞춰 각 부처가 대책을 만든 뒤 컨트롤 타워가 이를 취합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의 책임 주체를 정치권은 정부에, 정부는 한국은행에 떠넘기고, 정부 내에선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금융위에, 금융위는 자율이란 명분을 내세워 해당 기업과 채권은행만 추궁하는 모양새다.

총선 직후인 지난달 15일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 간담회를 가진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은 구조조정에 관한 정부의 통제력 위축이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유 부총리는 “현대상선이 가장 걱정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본래 의도는 진척이 느린 구조조정을 정부가 직접 개입해 주도해 나가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기 진행하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답답한 일처리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했다. 경제부처 수장간 시각차이가 부처간 갈등으로 증폭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유 부총리는 한 발 물러섰고,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 개입은 없다”고 못박은 뒤에야 겨우 진정됐다.

‘한국형 양적완화’ 이슈는 찬성·반대를 넘어 한은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처럼, 산업 구조조정은 현재의 경제 불황을 극복하고,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본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산업계는 정부가 의견 조율 없이 부처별로 자기 입맛에 맞춰 개별적으로 뛰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 업종에 속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자구안을 제출하라고 해서 제출했다. 채권단은 미리 준비한 답안지가 있었는지, 우리가 보기엔 무리가 없는 사소한 조항도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내 지적했다. 또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여기저기서 이유를 물어보기에 일일히 해명해야 한다. 얼마나 시간 낭비인가. 살기위해 뛰기도 바쁜 때라는 것을 다 알면서 형식에만 얽매여 있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아킬레스건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인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거침없이 구조조정을 밀어부처고 있으며, 아베 총리는 2021년까지 ‘3연임 총리설’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반면 박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힘이 크게 위축돼 야당과 노동계를 설득하는 것은 물론 정부도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흔들리니 산업계도 우왕좌왕 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채권단, 기업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자리는 마련되지 못했다. 죄인과도 같이 머리를 조아리며 훈계만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업종별 단체들이 나서서 산업계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안을 제시해야 하지만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눈치만 보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의견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채권단이 업종별 단체들에게 직접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조사·연구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결과물(보고서)이 나오면 논의 여부를 검토해볼 순 있지만 일단 정부의 생각대로 채권단과 개별 기업간 진행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 대상 업종에 속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기왕 정부가 칼을 뽑았으니 제대로 흔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도 살지 죽을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면서 “정부가 확실한 컨트롤타워를 세워 추진했으면 좋겠다. 구조조정은 시간 싸움이다. 이렇게 각론만 늘어놓다간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