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규제, 규제…융통성 없는 정책, 법안에 도태되는 아이디어

2016-05-13 00:01
발전은 커녕 부작용에 역차별까지…능동적이고 유기적인 법 개정과 적용이 관건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전국 최초로 영업을 시작했던 한 푸드트럭 사업자가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최근 폐업했다. 당초 정부는 푸드트럽 사업 허용이 대표적인 '규제 개혁의 상징'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영업 허용지역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여전한 규제들로 인해 곧이곧대로 법을 지키며 장사를 해서는 수지를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혁신적 수준의 규제 개혁 이뤄져야 한다'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기업의 체감도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대통령의 질타에도 복지부동 정부와 무능한 국회는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과 안팎으로 산재해 있는 규제 때문에 시장 진입에 발목이 잡힌 실정이다.

현 정부의 규제 개혁 의지는 말뿐이라는 지탄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사장되는 아이디어

푸드트럭 사업은 청년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관광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혔다. 그러나 식품위생법상 영업 가능 지역은 관광지, 체육시설, 도시공원, 하천부지, 학교, 고속국도 졸음쉼터 등으로 한정됐다. 그렇다고 가능 지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영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가받은 특정 장소에서만 영업할 수 있어 유동인구 변화가 있어도 허가를 받은 영업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

신성장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드론 역시 규제에 가로막혀 사업 확대에 제약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군사 목적이나 사진촬영 용도로만 활용 범위를 제한하고 있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 밖에 고도 150m 이상, 인구 밀집 지역, 비행장 반경 9.3㎞ 이내도 비행 금지 구역이다.

반면에 중국은 군사 시설 등 특정 구역만 드론 비행을 제한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도 원격의료와 의약품 택배에 드론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에 대해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있다. 산소포화도, 심전도 등의 센서 기술은 개발돼 있지만 이 기술을 스마트워치에 추가하면 의료기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IT기기 자체는 미래창조과학부 관할이지만, 보건복지부의 승인 과정이 필요하고 기기를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재승인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다.

게임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규제로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있다.

여성가족부 소관의 강제적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시간대 게임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과 태국 등에서는 이미 실효성이 없는 제도로 평가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법률 규정이다.

◆ 규제 정책의 부작용과 역차별

과도한 규제 정책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국내 사업을 보호 육성하겠다는 취지의 법안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사례도 있다.

최근 우유 재고가 쌓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꼽히는 것이 원유가격연동제이다. 이 제도는 2012년 도입된 제도로, 매년 8월 통계청이 발표한 우유 생산비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바탕으로 원유의 기본가격과 등급 가격을 정하게 된다.

하지만 생산비 변화만을 원유 기본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에 수요 감소나 과잉생산 등에 대해서는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어 공급과잉 속 남아도는 우유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에 대해서만 규제를 강화해 수입제품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국산 맥주 업체는 수입맥주 공세로 갈수록 위축되고 있지만, 정부의 역차별로 성장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 수입맥주가 다양한 제품과 판촉활동으로 시장점유율을 점차 늘리고 있지만 국산 맥주는 경쟁제한적 규제 때문에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낮은 독과점 맥주 업계의 경쟁 촉진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맥주 업체들은 국내 맥주 업체에만 독과점 규제가 추가로 가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정부 주도로 시작한 '설탕과의 전쟁'에서도 역차별은 존재한다.

정부 정책에 제과업계 전반에서 제품 리뉴얼을 위한 연구 인력과 생산 설비 등 비용 투자를 고심 중인 상황이다. 하지만 '당과의 전쟁'에 수입과자는 제외되면서 맛과 가격경쟁력에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 및 SSM에 대한 영업규제 강화도 외국계 기업은 예외로 적용됐다. 일본계 SSM인 트라이얼마트와 바로마트 등은 요건 상 대형마트임에도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유통학회 안승호 명예회장(숭실대 경영대학원 원장)은 "최근 프랑스 정부가 상점의 일요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전세계적으로 규제를 줄이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도태되고 있는 모습"이라며 "소비자가 지불하는 불편함 역시 비용의 일부인 것을 인지하고 불합리적인 규제는 능동적·유기적으로 적용하고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