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지원 놓고 시각차… 임종룡 '외환위기' vs 이주열 '금융위기'
2016-05-10 01:33
임 위원장과 이 총재는 중앙은행이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입장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서로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비치면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여론전까지 펼치는 모양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임종룡 위원장이 주장하는 구조조정 방법은 IMF 외환위기 당시 한은이 수출입은행에 직접 출자했던 방식이다. 반면 이주열 총재는 출자가 아닌 '대출'을 제안한 상태다. 담보를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임 위원장은 최근 "국가적 위험요인 해소를 위해 중앙은행이 적극적 역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필요시 산업은행법을 개정해 한은 출자를 추진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앞서 한은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수은에 각각 7000억원, 2000억원씩 총 9000억원을 출자한 바 있다. 이 돈은 수출입은행이 외환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데 쓰였다. 이처럼 정부 측은 한은이 수은에 출자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출자할 명분이 있다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주열 총재는 '중앙은행 손실 최소화'라는 원칙을 앞세워 출자 방식을 반대하고 있다. 당시 수은에 출자했던 자금을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에 들어갈 땐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면서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출자보다 대출이 적합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국책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던 자본확충펀드를 꺼내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자본확충펀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시중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자 은행들의 자본확충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은이 채권을 담보로 은행에 대출해줘 은행의 BIS 비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은행권이 기업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고 실물경제 지원과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앞서 한은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 2009년 3월 산업은행에 3조2966억원을 대출해줬고, 이후 이를 전액 회수했다.
한은은 과거에도 출자가 아닌 '대출'을 통해 금융사를 지원한 사례가 많다. 1992년 8월엔 투신사의 경영악화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되자 한국·대한·국민투자신탁 등에 2조9000억원을 대출해줬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짐에 따라 금융권에 총 10조7656억원을 특별 대출해줬다.
가장 최근에는 2006년 2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채무 재조정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을 통해 자산관리공사에 4462억원을 연 2%의 금리로 빌려줬고, 이를 2006년 말 전액 회수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와 한은 모두 "(국책은행 자본확충)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출자, 자본확충펀드 등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계속 논의해 나가겠다"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융당국과 중앙은행 수장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 이번주 내에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이날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둘러싸고 기관 간의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도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정부는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방안을, 한은은 출자보다 대출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대해 정부와 한은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비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