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노키아 패러독스
2016-04-27 10:54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헬싱키 공항은 벌써 초겨울이었다. 노키아 계열사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1시간 연착했다. 마중나온 분들에게 “늦어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웬걸 이 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표정이다. “회사에서 인터넷으로 이 비행기가 연착하는 것을 확인하고 시간에 맞춰 나왔다.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 미안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도 제대로 서비스가 안 되는데, 핀란드는 1999년에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이미 이런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처럼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나라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노키아는 1999년에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의 휴대폰 제조업체가 되었다. 세계 120개국에 9만 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최첨단 통신회사였다. 휴대전화 시장의 30%를 노키아가 장악했다. 노키아의 전신은 1865년에 세워진 제지회사다. 핀란드의 풍부한 목재와 물을 활용하여 펄프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고무회사를 합병하여 타이어도 만들었다. 1912년에는 전기케이블 회사를 세웠고, 1984년에 처음 무선 전화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제지회사와 타이어회사를 매각해버렸다. 아들 회사가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 회사를 팔아버린 것이다. 비즈니스는 그런 것이다.
노키아가 망했다. 세계 최고의 핸드폰 메이커가 애플의 아이폰 한 방에 휘청거렸다.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통신기기에서 손안의 컴퓨터로 순식간에 경쟁의 그라운드가 변해버렸다. 이 상황에의 대응이 늦었다. 운동장을 바꾸고, 게임의 룰을 바꾸고, 제품의 컨셉을 바꿔버리는 창의적 역량에 있어서 애플이 노키아보다 앞섰던 것이다. 2013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노키아를 인수했다.
핀란드 옆으로 가보자. 조선업으로 번창했던 스웨덴의 3대 도시 말뫼가 2002년 대형 선박건조용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울산 현대중공업에 팔면서 흘렸던 눈물을 ‘말뫼(Malmoe)의 눈물’이라고 한다. 스웨덴 조선업의 몰락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이제 말뫼에서 눈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말뫼의 미소’로 바뀐 지 오래다. 말뫼는 신재생에너지 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2020년 탄소중립도시, 2030년 100% 신재생에너지도시를 목표로 삼고 있다. 조선업 중심의 공업도시가 쇠퇴하며 한 때 절망에 빠졌지만, 이제는 신재생에너지를 가장 잘 활용하는 세계적인 에코도시로 변신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요즘 우리 경제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조선, 철강 등 한 때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산업과 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 거제의 눈물, 목포의 눈물, 울산의 눈물이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근로자들이 구조조정에 따른 실직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요즘 같으면 다른 직업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실업급여가 충분히 그리고 오래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새로운 직업과 기술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