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반드시 실패하라
2016-04-19 13:28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반드시 실패하라. 어처구니없게도, 이 말을 사훈으로 삼고 있는 회사가 있다. 구글이다. 구글의 8가지 혁신원칙 중 하나가 바로 ‘실패 장려하기’다. 자주 실패하고, 빨리 실패하고, 진취적으로 실패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버전의 제품과 서비스를 신속히 출시하고, 고객의 의견을 얻어서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로 개선해 가라는 얘기다. 이 얘기는 실패를 자산으로 인식하고 실패를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회사에서나 가능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나온다.
반드시 성공하라. 이것은 우리나라의 얘기다. 우리는 한번 어긋나면 ‘실패자’,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버린다. 금융기관은 이런 낙인이 찍힌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에서 우수한 사람들은 창업이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지 않게 된다.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40대 1에 달하고, 우수한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1순위로 의대를 지망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업에 도전을 하려고 할 것인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우리나라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축복이었다. 우리나라 5000만 국민들에게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의 현 주소를 보여줬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산업과 기술의 현주소는 얼마나 뒤져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새로운 변화의 계기는 반성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중에서 미국과의 기술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이 바로 인지컴퓨팅,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최첨단 ICT 기술이다. 알파고와 관련된 기술들이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기술과 관련 산업의 경쟁력이 세계 추세에 크게 뒤쳐져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척박한 환경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프로그래머라고 하면 ‘밤새 코딩하는 노가다’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사람이 알파고를 부리는 시대에서 우리는 알파고가 사람을 부리는 비참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아직도 부동산으로 쉽게 돈 벌수 있고, 독과점으로 담합해서 높은 초과이득을 얻을 수 있는 ‘지대추구형 경제’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면 어느 누가 ‘혁신추구형 경제’로 나아가려고 할 것인가? 혁신적인 기업가가 존경받고 보상받는 사회, 실패가 장려되고 자산으로 인정받는 사회, 실패해도 최소한의 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나라에서도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나올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최첨단 ICT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창업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어야 수많은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에서 가장 효과적인 창조경제 정책은 바로 ‘실패를 장려하는 것’이다. ‘나 실패했어.’, ‘잘 했네. 이제 성공할 확률이 높아졌네. 축하해.’ 이런 대화가 카페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들려오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