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코리아] 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옛 것을 지키기만 하면 박물관에 그쳐…대중과 함께 살아 숨 쉬어야”

2016-04-27 12:42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은 26일 "우리 국악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 속에 함께 살아 숨 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국립국악원 제공]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우리 국악을 지금까지 지켜온 것도 잘한 일이지만, 이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공연 예술은 그 시대의 사람과 함께 살아 숨 쉬어야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은 지난 26일 오후 국립국악원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서두를 꺼냈다.

각종 국악 공연을 비롯해 학술 연구, 국악 교육, 해외 교류 등을 추구하는 국립국악원은 신라시대 이후 전승돼 온 궁중음악기관에 그 바탕을 둔다. 8.15 해방 후 궁중음악기관이 해체된 후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로 존속하다가 1951년 이후 국립국악원으로 이어졌다.

현재 서울 서초구에 자리잡은 국립국악원은 6·25 전쟁 발발 후 1951년 부산에서 개원했다. 그 이후 서울 운니동과 장충동 청사를 거쳐 현재의 서초동 청사에 터를 잡았다.

국립국악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으로 국악연구실·기획관리과·장악과·국악진흥과·무대과를 두고, 정악단·민속악단·무용단·창작악단 등 네 개의 소속연주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북 남원에 국립민속국악원, 전남 진도에 국립남도국악원, 부산광역시에 국립부산국악원 등 세 곳의 지방 국악원을 운영하고 있다.

◆첫 여성 국립국악원장, 요일별 공연 콘셉트로 특화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은 지난 2014년 부임했다. 가야금 명인이자 첫 여성 국립국악원장으로 관심을 모았다. 가야금 연주자였지만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원 때까지 국악 공부를 해 국악 전반을 섭렵했다.

김해숙 원장은 “학생 시절부터 국립 교육 기관에서 공부했다. 국립국악원에서도 연구실 실장으로 일했다.”면서 “부임 첫 해에는 국악에 대한 정책이나 진흥을 하나라도 잘 만들고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다”고 부임 초기 시절을 회상했다.

현재 국립국악원은 다양한 이야기 손님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국악 토크 콘서트 ‘화요다담’을 비롯해 전통 무용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수요춤전’ ,다양한 전통 악기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목요풍류’, 여러 장르의 조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금요공감’ , 국악에 동화를 접목한 ‘토요국악동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요일별 공연 콘셉트를 정해 색다른 공연을 펼치는 한편, 국악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클래식이나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와의 융합으로 독창적인 무대를 꾸미고 있다.

요일별 공연 콘셉트는 국립국악원의 공연장 특색에서 비롯됐다. 국립국악원은 연희 풍류마당과 예악당, 우면당, 풍류사랑방 등 네 개의 공연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 풍류사랑방은 옛날 전통음악이 펼쳐졌던 사랑방 콘셉트로 지어졌다.

김 원장은 “우리 악기가 자연 소재로 됐기 때문에 방에서 공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서구 극장은 대형화되고 마이크를 쓰기 때문에 소리가 왜곡된다.”면서 “그러던 차에 풍류사랑방이 개관했고 요일별 공연 콘셉트를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토요국악동화’는 6월 공연까지 매진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은 26일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 현대화를 모두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사진=국립국악원 제공]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 현대화 모두 잡아내야

김 원장은 부임 첫 해부터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 현대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 부분이 당시 김 원장이 봤던 국악계의 중요한 과제이고 숙제였다. 광복 후 한국의 문화도 서구권 문화에 속했기 때문에 국악을 지키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다.

우선 김 원장은 국악의 보편성을 얻기 위해 ‘공무도화가’를 제작했다. 공무도화가는 풍류사랑방에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1년 내내 국악 공연이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에는 종묘제례악으로 한불 수교 공연을 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세계 인류 역사 중 어디를 뒤져봐도 한 왕조를 위한 대형 예술을 갖고 있는 사례는 없었다. 대규모의 종묘제례악은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음악적 자산이다. 2014년부터 준비해 2015년 프랑스 대극장에서 개막하기도 했다. 세계화를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생각하는 세계화는 단순히 우리 국악을 해외에서 공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외국 음악가들이 직접 우리의 국악을 익혀 공연하기를 바란다. 외국 음악가들에게 우리 문화의 유전자(DNA)를 심겠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올해부터 2개년 계획으로 미국의 세계적인 작곡가들을 통해 우리 관현악을 무대에 올릴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 악기에 미국 작곡가들이 곡을 써서 미국 도시를 돌면서 공연할 예정이다.”며 “외국 작곡가들이 우리 악기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워크숍도 진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이어 “단순히 공연만 하고 떠나는 것과 그들이 우리 음악을 체화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음악적 골수 이식이 중요하다. 한국 음악을 알고 자신의 음악을 넣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을 조직적으로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예술성만 고집한 채 대중을 외면하면 결국 ‘방안퉁소’

국악의 대중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악에 대한 가장 큰 선입견은 지루하고, 어렵고, 재미없다는 것인데, 빠른 비트와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빠져 있는 젊은 세대에겐 특히 국악의 어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김 원장은 “대중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들으면서 공감하고 듣는 것이라 거기에 관련된 옛날 음악을 띄우는 것도 한 방편”이라면서 “오늘날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음악을 만드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현재는 생활 국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은 지난해 국악 버전 캐럴을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이와 함께 대중음악 작곡가들에게 국악을 알리기 위한 아카데미도 설립했다. 10여명을 선발하는데 100명이 넘는 인원이 신청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아카데미의 형식을 다양화할 예정이다. 연극인을 대상으로 한 음악극도 기획중이다. 또한 문화창조융합벨트를 통해 개인이나 기업들과 함께 국악을 사업화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앞으로 한국 인구가 줄어들면서 국악 인구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국악이 국악 전공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일반 국민을 국악 애호가로 만들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 원장은 “광복 후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가 훼손됐지만 그 와중에 보존된 것이 국립국악원의 모습이다. 그동안 잘 보존해왔지만 이대로만 가면 결국 박물관밖에 안된다.”면서 “무형문화재는 박물관이 돼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에 살아 숨 쉬어야 생명력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원장은 국악 예술인들이 ‘방안퉁소’여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방안퉁소란 방에서 퉁소를 부는 연주자를 말하는데,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대중성을 포기한 채 자신의 예술성만 고집한다면 방 안에서 혼자 노는 것과 다름 없다는 뜻이다.

국민을 울릴 수 있는 국악 만들어야

결국 김 원장은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줄 수 있는 멜로디나 음악을 만들어서 공감하는 것이 국립국악원의 소명이라고 했다. 국립국악원장이 누가 되든 이러한 자세로 임한다면 대중과의 간격이 좁아질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원장은 “국민의 시선이 서구화된 부분이 있지만 우리가 눈높이를 맞추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같이 갖고 가는 양면 작전이 필요하다”면서 “서양 음악은 화성이 중요하지만 우리 국악은 선율과 리듬적인 특징이 중요하다. 특수성과 보편성을 함께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원장은 “국악 판소리에는 한문으로 된 가사가 많다. 고사성어도 많이 인용되고 등장한다.”며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가 들을 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기 때문에 개사(改詞)가 필요하다. 공연은 관객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아래 성립되므로 관객의 눈높이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해숙 원장은?
△1954년 부산 생 △국립국악고 △서울대 음대 국악과 학사·석사·박사 △서울예술전문학교·성심여대·서울시립대·이화여대·숙명여대·중앙대·추계예술대 강사 △대한민국예술원 전문직연구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부교수·교수 △한국산조학회 회장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장 △국립국악원 원장 △수상내역 전국여고음악경연대회 가야금 부문 특상, 5·16 민족상 음악부 가야금부문 대통령상, 공간현대음악 연주상, 관재국악상 △주요 저서 25현 가야금 연습곡집 ‘법고창신’ ‘산조연구’ ‘전통음악개론’ ‘청흥둥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