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김흥국 “궁리하며 완만한 10도의 경사길을 올라가라”

2016-04-25 14:43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74)

김흥국 하림그룹 창업자[사진=하림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014년 11월, 김홍국 하림그룹 창업자는 나폴레옹 모자를 낙찰 받아 화제를 모았다.

평소 ‘불가능은 없다’라는 나폴레옹 좌우명을 좋아하지만, 그 이면에 담겨있는 ‘긍정 마인드’를 더 좋아해서 구입을 결심했다고 한다. 꿈과 비전의 본질은 ‘긍정’이고 이 긍정을 통해 기회를 잡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8년, 11살이던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병아리 10마리를 키운 뒤 닭장수에게 팔아 2500원을 손에 쥐며 사업에 눈을 떴다는 김 창업자는, 1978년 황등농장을 설립에 이어 1987년 하림식품(현 하림)을 설립해 국내 1위 닭고기 생산, 가공 회사로 키워냈다. 양돈, 오리, 사료, 홈쇼핑, 가축약품 등으로 사세를 확장해 2001년 하림그룹을 출범시켰으며, 2015년 해운업체인 팬오션을 인수에 성공하며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김 창업자는 세 번의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을 이뤄냈다. 첫 번째는 20대 초반 황등농장의 성공으로 자만하다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식품회사 영업사원이 된 그는 우연히 들은 강연회에서 영감을 얻어 1차 농축산물에 부가가치를 만들어 2차 가공식품으로 만들고 이를 시장에 내다파는 ‘삼장(농장-공장-시장) 통합경영’을 구상했다. 이 전략으로 하림은 단기간에 국나 닭고기 시장을 장악했다.

두 번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국내 최대 육가공 공장을 완공했을 때였다. 은행 돈줄이 막혔고 닭 소비가 줄어들어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김 창업자는 국내에서 자금을 변통하기 어려워지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산하인 국제금융공사(IFC)에 투자를 요청했다. 1998년 10월 IFC는 하림에 20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다.

세 번째 위기는 2003년이었다. 그해 5월 본사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피해액만 100억 원이 넘었고, 연말에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에 발생해 닭고기 수요가 급감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 김 창업자는 포기 대신 재기를 택했다. 다른 공장을 빌려 닭을 생산해 거래처에 공급하는 한편, 공장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1년 만에 재가동했다. 업그레이드 된 새 공장에서 나온 제품들은 위생과 안전, 품질이 뛰어나 AI로 멀어졌던 소비자들을 다시 불러 들였으며, 나아가 그들로부터 더 깊은 신뢰를 얻으며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김 창업자는 “삶에서 안전지대는 없다. 보이지 않아 두려운 미래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않는 도전, 용기와 도전을 지치지 않게 하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일어서서 나아가자고 말하는 이들,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이 리더이며 역사의 개척자들이라는 것이다.

“머물면 편안해지고 편안해지면 유혹에 빠지고 유혹은 타락을 동반한다. 나아가라. 안주하지 마라. 안전지대를 떠나라. 궁리하며 가라. 그것이 제 인생철학이다”는 그는 ‘궁리하며 오르는 완만한 10도의 경사길’을 올라가라고 전했다.

‘궁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사고력, 즉 생각의 힘이며, ‘오르막’은 평지를 걷는 것보다 도전적이며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완만한 오르막’은 경사각이 낮으면 시장은 미미하고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출발점으로부터의 편차가 커져 성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그는 “안주의 유혹을 뿌리치고 끊임없이 궁리하며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가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