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미학]혀 끝까지 홀리는 빨간 유혹 “이게 대구 맛이라카이”
2016-04-21 00:10
아주경제 기수정 기자 =여행기자 3년 차. 출장이든 여행이든 국내외 곳곳을 둘러보며 견문을 넓혀가고 있지만 대구광역시는 태어나서 지금껏, 여행기자로 활동하면서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대구는 구경할 곳 없고 먹을 것도 없으니 자연스레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주변에서 맛있는 음식도 많고 좋은 여행지도 많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니 대구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동대구행 KTX에 몸을 실었다.
'백문이 불여일식(食)'. 백 번 들어도 한 번 먹어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동대구역에 내려 대구의 먹거리를 하나하나 경험하기 시작했다.
맛도 좋고 값도 저렴한 음식들을 차례로 맛보니 짧은 식견으로 대구를 깎아내렸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1박 2일간의 식도락 여행을 끝낸 후의 만족감은 늘어난 뱃살만큼이나 컸다.
앞으로 주변의 누군가가 "대구 어떠니"라고 물어온다면 기필코 "대구는 맛있다."라고 답해주리라.
◆닭똥집이 이렇게 맛있다니…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이름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닭똥집 골목'이라니. 본래 닭의 모래주머니를 속되기 일컫는 말이지만 꽤 친근하면서도 즐거운 이름이다.
역사도 꽤 깊었다.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은 4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의 먹자골목이다. 안지랑 곱창 골목만큼이나 유명한 곳이기도 한 닭똥집 골목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2015음식테마 거리'이기도 하다.
닭똥집은 대개 볶아 내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곳의 인기메뉴는 닭똥집 튀김이다.
곳곳에 양계장이 있었던 대구에는 1972년 닭을 팔면서 부산물인 닭똥집이 많이 남아 고민하다가 우연히 닭똥집을 튀겨 손님에게 서비스로 제공한 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본 메뉴로 지정해 지금까지 판매하고 있다.
현재는 30여 개의 업소가 모여 골목을 이루고 있지만 30년 전통의 평화통닭(053-958-0816)이 가장 인기다.
프라이드, 간장, 양념 등 닭똥집 튀김도 치킨만큼 다양한 맛으로 조리해 상에 내오니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평화시장 똥집은 시원한 맥주 안주로도 제격이다. 맛 좋고 값싼 먹거리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찜닭도 인기기 메뉴 중 하나다. 간장을 주재료로 하는 안동 찜닭과는 달리 대구 찜닭은 고춧가루를 사용해 매콤하게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간장 맛 양념치킨 맛 프라이드 맛을 고루 섞은 똥집모듬을 대(大) 1만5000원에 판매한다.
찜닭은 한 마리 기준 1만7000원이다.
◆달달한 달떡 먹을까? 강렬한 양념장의 맛 윤옥연 할매 떡볶이 먹을까?
이어 발길을 향한 곳은 떡볶이집. 달떡과 윤 할머니 떡볶이를 뚝딱 비우는 것이 두 번째 목표였다.
최근 백종원의 3대천왕 떡볶이 편에서도 다뤄졌던 이 두 집을 찾게 된 것은 비단 방송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소 떡볶이라면 삼시 세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기에 대구 떡볶이집 방문은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자연스레 이뤄졌다.
먼저 찾은 곳은 신내당시장에 위치한 달고 떡볶이(053-655-0877)다.
들어가자마자 외쳐야 하는 이름은 바로 "달떡 주세요."다. 달아서 달떡으로 이름 붙여진 것은 아니다. 달 모양 떡볶이는 더더욱 아니다.
달성고등학교 주변에 위치해 있어서 달고 떡볶이라고 이름 지은 것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달떡으로 줄여 부르는 터다.
주문하고 나서 앉기가 무섭게 떡볶이에 납작 만두를 섞어서 한 그릇 내준다. 달콤한 떡볶이와 떡볶이 국물에 목욕을 한 납작만두가 쫄깃쫄깃 입안에서 춤을 춘다.
'달아서 달떡'은 아니지만 '달떡'답게 맛은 달콤하다. 물엿과 설탕을 적절히 섞어 간을 하는 터다. 떡볶이의 매콤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주로 찾는다.
라면 그릇에 푸짐하게 내어오지만 가격은 단돈 1000원이다. 주머니가 얇은 학생들도 반할만한 가격이다.
다음 목적지는 수성동 4가에 자리 잡은 윤옥연 할매 떡볶이(053-756-7597)다.
할머니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이곳은 달떡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다. 떡볶이의 달달한 맛을 상상하면 안 된다.
설탕 등 단맛을 내기 위한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주인장이신 윤옥연 할머니께서 직접 제조한 양념장과 후추로만 떡볶이의 맛을 내 달콤한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게 안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어여 들어와~" 하는 할머니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게의 주인장 윤옥연 할머니다.
마치 손주를 대하듯 인자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할머니의 모습에 끌려 들어가 마법에 걸린 듯 '천천천'을 외친다. 천천천? 이곳에 가면 으레 주문하는 방법이다.
떡볶이에 튀긴 어묵, 튀긴 만두를 함께 준다. 각각 1000원씩이라 해서 '천천천'으로 불린다.
단 맛이 전혀 없는데도 묘한 감칠맛이 혀를 자극한다. 단 맛보다는 떡볶이 본연의 매콤한 맛을 선호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돌아서서 나오는 순간 윤옥연 할매 떡볶이를 떠올려 택배로 주문해 먹기도 한대서 마약 떡볶이라고도 불린다.
양 또한 푸짐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이곳은 특히 택배 주문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배송받을 수 있어 이곳을 한 번 찾은 사람들은 전화주문도 많이 한다고 한다.
◆야끼우동과 탕수육으로 든든한 한 끼 '리안'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대구 10미(味) 중의 하나인 야끼우동을 하는 중국식 식당 '리안(053-746-0203)'이었다.
1970년대 대구지역 중화 요리사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게 개발해 낸 것이 지금의 야끼우동이란다.
수성대 입구에 위치한 리안은 야끼우동의 원조는 아니지만 체인점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 묘하게 끌렸다. 정직한 재료, 질 좋은 요리로 방문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이런 운영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 찾은 이곳은 벌써 많은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야끼우동 한 접시와 탑처럼 쌓아 올린 탕수육 한 그릇이 등장한다.
매콤한 양념 옷을 입은 각종 해산물과 야채는 물론 버섯, 호박, 양파 등 야채를 넣어 센 불로 볶아 국물 없이 낸 것이 쟁반 짬뽕같기도 하다.
이곳 탕수육 옷은 찹쌀을 입어 더욱 쫄깃하다. 쫄깃한 식감의 고기에 달콤한 소스를 듬뿍 찍으니 배가 불러도 쉽게 젓가락을 놓을 수 없다.
3~4인분의 양을 주문했지만 다섯 명이 둘러 앉아 말도 없이 먹어도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푸짐한 양과 꽤 훌륭한 맛임에도 가격은 야끼우동 6000원, 탕수육 소(小) 기준 1만2000원으로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