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암흑의 시대를 맨발로 걸어 온 세 소녀

2016-04-15 01:01
몽화 | 나는 왜 늘 아픈가 | 기발한 과학책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몽화' 권비영 지음 | 북폴리오 펴냄

'몽화'                                               [사진=북폴리오 제공]



우리 역사에서 지금껏 해결되지 않은 숙제이자 앞으로도 쉬이 치유되지 않을 듯한 상처가 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강제징용이다.

이를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소설 '몽화'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지난 2009년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를 세상에 알렸던 작가 권비영의 시곗바늘은 이제 일제강점기를 가리킨다. 역사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영혼들에 관심을 가져 온 그는 기록에 남아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무명씨로 살다가 잊히거나 잊혀갈 우리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소설엔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세 소녀 은화, 영실, 정인이 등장한다. 간호사가 되길 바랐지만 비극적으로 위안부로 끌려가는 은화, 친일파 아버지를 둔 데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먼 타국으로 가게 되는 정인, 그리고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하는 아버지와 만나는 등 힘든 상황에서도 올바르게 살아가는 영실 등 격동의 시기를 살아갔던 소녀들은 자신들의 일그러진 일상을 씨줄과 날줄을 엮듯 촘촘하게 펼쳐낸다.

저자는 "일본의 폐탄광 인근에서 무심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꽃나무와 떨어지는 꽃송이를 보며 오랜 고민이 때를 만난 듯 생명력을 얻었다"며 "슬픈 눈빛으로 서 있는 위안부 소녀들의 맨발에 신발을 신겨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그때의 소녀들'과 역사 앞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는 과연 당당할 수 있는가.

384쪽 | 1만3800원

◆ '나는 왜 늘 아픈가'  크리스티안 구트 지음 | 유영미 옮김 | 부키 펴냄

'나는 왜 늘 아픈가'                                            [사진=부키 제공]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든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다. "몸 관리에 소홀했더니 역시 경고등이 켜지는구나" 또는 "신경 좀 쓴다고 했는데 뭐 이렇게 문제가 많대?" 혹자는 '건강검진은 몸에 대한 공식적 자아비판 기회'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신경과 의사이자 의학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티안 구트 박사도 '예방이 최선의 대책'이라는 현대 의학의 신조에 따라 병원에 몸을 잠시 맡겼다. 결과는? 그의 운동 습관, 흡연 여부에서 시작된 검진 의사의 '심문'은 기어코 식생활까지 파고들었고 결국 대사 이상 검사, 심장 검사, 전신 내시경 검사 등으로까지 이어졌다. 

구트 박사는 '이르든 늦든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진실과 마주쳤고, 의학이 내세우는 무조건적인 약속을 신뢰하고 따를 것인지 캐묻기로 했다. 그는 건강과 의학을 둘러싼 사람들의 온갖 반응과 세태, 특히 '건강강박증' 또는 '건강염려증'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안티에이징 시술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는 할리우드 연예인, 건강 정보를 찾아다니느라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실상 큰 효과도 없는 독감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고 경솔하다며 겁을 주는 언론 등은 그의 '조롱' 도마에 오르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들을 통해 건강에 대한 광기와 허세, 과장과 맹신이 가득한 사회를 정조준한다.

그가 현대 의학의 한계를 신랄하게 지적한다고 해서 모든 의료 행위와 건강한 생활 습관 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강박증에 사로잡혀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온통 의학적 예방 조치·치료에만 쏟아붓는 것은 허무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가 던지는 메시지이다. 

320쪽 | 1만4800원

◆ '기발한 과학책' 미첼 모피트 外 지음 |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기발한 과학책'                                      [사진=사이언스북스 제공]



'소리 없는 방귀 냄새가 더 지독할까?' '아침에 일어나면 왜 입 냄새가 날까?' '재채기를 세게 하면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까?' 

실없는 질문이라고 웃어 넘기기에는 지극히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는 현상들이다. 다만, 이런 궁금함을 풀어주기 위한 답변이 어렵고 복잡하며 길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2012년 대학을 갓 졸업한 미첼 모피트와 그레그 브라운은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즐길 수 있도록 짤막한 과학 상식을 담은 영상물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생물학 전공자인 두 사람은 사람들 대부분이 과학을 지루해하거나 어려워한다는 데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ASAP(as soon as possible, 가능한 빨리) 사이언스'를 시작했다. 화이트보드에 사인펜으로 재빠르게 그린 그림과 친근한 목소리로 과학을 소개하는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고정 구독자 500만명, 전체 영상물 누적 조회 수 5억뷰를 달성하는 등 과학 분야 인기 채널로 자리잡았다.

'기발한 과학책'은 여기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상물 19편과 그동안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주제 21편을 선별해 엮었다.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에서부터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까지, 과학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유쾌한 사다리' 같은 책이다. 

264쪽 | 1만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