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기업사냥꾼 '검은 고리'…1160억원 불법 대출
2016-04-05 13:48
아주경제 유선준 기자 =은행과 금융감독원 직원이 브로커 소개로 돈을 받고 기업사냥꾼에게 1000억원이 넘는 불법대출을 알선하거나 눈감아줘 대규모 부실을 초래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박길배 부장검사)는 중견 터치스크린 제조업체이던 디지텍시스템스가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도록 도운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산업은행 팀장 이모(50)씨를 구속기소하고, 국민은행 전 지점장 이모(60)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또 이 회사의 금융감독원 감리를 무마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전 금융감독원 부국장 강모(58)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디지텍시스템스가 1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은행권에 로비하고 돈을 챙긴 혐의(특경법상 알선수재 등)로 금융브로커 최모(52)씨 등 5명도 구속기소하고, 곽모(41)씨 등 3명은 불구속기소했다. 달아난 이모(71)씨 등 2명은 기소 중지했다.
이들은 2012년 12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디지텍시스템스가 불법 대출을 받도록 도우면서 돈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대출 등 내역을 살펴보면 수출입은행 400억원, 산업은행 250억원, 국민은행 280억원, BS저축은행 130억원, 농협 50억원, 50억원어치 무역보험공사 지급보증서 발급 등 1160억 상당이다.
조사 결과 이들은 기업사냥꾼의 인수로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했던 디지텍시스템스에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한 대규모 대출을 받도록 해 금융권 부실을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텍시스템스는 2012년 2월 자본이 없는 기업사냥꾼들에게 인수됐고, 이후 횡령과 매출·주가조작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기업사냥꾼들은 부족한 인수자금을 메우려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14년 무더기로 기소돼 중형이 선고된 바 있다.
여의도 증권가에는 이 회사가 사채업자들에게 매각됐다는 풍문 등이 돌았고, 이러한 풍문을 지연 공시해 코스닥 시장에서 주식매매정지 처분까지 받는 등 거액을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업사냥꾼들은 은행별 '맞춤형' 브로커를 2억 2000만∼4억 5000만원을 주고 대규모로 고용했다.
브로커 소개로 산업은행 팀장 이씨는 2천만원, 국민은행 전 지점장 이씨는 3000만원을 받고 거액의 대출을 도왔다.
전 금감원 부국장 강씨는 현직에 있으면서 디지텍시스템스의 특별감리를 무마하는 대가로 33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대출은 파국으로 이어졌다. 디지텍시스템스는 작년 1월 상장 폐지돼 거액의 대출은 대부분 회수하기가 어렵게 됐다.
불법 대출로 아직 상환되지 않은 금액은 산업은행 218억원, 수출입은행 220억원, 무역보험공사 50억원, 국민은행 269억원, 농협 57억원, BS저축은행 41억원 등 855억원에 달한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사냥꾼들은 금융브로커들을 이용해 대출을 성사시킨 뒤 대출금 대부분을 미상환하는 등 시장경제를 교란했다"며 "신생 기업들이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으로 자본을 조달해 성장할 수 있는 풍토 생성을 저해한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