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북한 미사일과 '꽃신 할아버지'
2016-03-23 03:01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고강도 대(對)북제재든 북한의 대남 타격능력 과시든, 또 일각에서 불고 있는 우리의 '독자적 핵무장론'이든 이제 남한의 국민들에겐 이 모든 게 별로 자극적이지 않다.
우리는 가랑비에 옷 젖듯 북한의 대남 도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동시에 분단국의 슬픔도 잊은 지 오래다.
올해 들어 지리하게 이어지는 북한의 릴레이 도발 시작점이었던 지난 설 연휴로 돌아가보자.
기자는 고향집에 내려가 있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소식에 들썩였던 설 다음날인 2월9일, 한통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지난 가을, 딸들에게 줄 꽃신 들고 금강산엘 간다던 '꽃신 할아버지'의 별세 소식이었다.
지난해 10월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단 취재차 금강산을 방문한 기자는 북녘 땅의 딸들에게 줄 꽃신을 상봉행사장으로 가는 내내 가슴에 품고 내려놓지 않았던 '구상연 꽃신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당시 98세의 최고령자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 '꽃신 할아버지'란 타이틀까지 얻었지만 고령으로 인해 거동도 말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여느 고령의 이산가족들처럼 60여년 전 기억의 저편에 있던 어린 딸에게 꽃신을 신겨주고 나니 강경했던 심신이 허약해 지셨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그보다 설을 하루 앞두고 가족들이 모두 모인 7일 아침, 북녘의 조선중앙TV 여자 아나운서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듣는 로켓 발사 소식은 당신의 무너질 대로 무너져 내린 가슴을 모두 내려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쉴세 없이 올라오는 '뉴스속보'에 오버랩 된 '꽃신 할아버지'의 부고 문자는 아무도 지켜내지도 보장하지도 못한 남·북 이산가족들의 행복처럼 쓸쓸했다.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 생일을 20여일 앞두고 축포처럼 발사체를 쏘아대고 있다.
꽃신 할아버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