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해고없는 구조조정, 루하오의 헛발질
2016-03-21 10:49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은 시범적으로 철강·석탄 분야에서의 과잉생산능력을 제거해 나갈 것이며, 이 과정에서 대규모 실직을 막는 것이 중국 정부의 새로운 임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16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종료후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리커창 내각은 2013년 출범과 함께 '안정성장과 구조조정'을 국정모토로 내걸었었다. 이어 지난해 10월 개최된 중앙재경영도소조에서 '공급측개혁'이라는 개념이 도출된 후, 국유기업 구조조정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도 공급측개혁이 강조됐으며 이번달 개최됐었던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에서도 공급측개혁 실행방안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됐었다.
공급측개혁의 핵심내용 중 하나는 과잉생산능력 감축이다. 중국은 우선 철강산업과 석탄산업의 생산능력을 시범적으로 감축한 후, 이 경험을 시멘트, 유리, 알루미늄 등 공급과잉 업종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생산능력감축은 제철소폐쇄, 탄광폐쇄를 수반하며, 대규모 해고를 유발한다. 대량해고는 사회불안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리 총리의 기자회견 발언처럼 '해고없는 구조조정'이 리커창 내각의 경제운용에 있어서 '절대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고속승진 위한 ‘전가의 보도’
과거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집정시기에는 '빠른 성장'이 정부의 정책목표였다. 당시 지방정부 지도자들의 '인사고과'는 해당지역의 경제성장률에 좌우됐다. 더 높은 곳으로의 승진을 갈구하는 지방 지도자들은 손쉬운 GDP 제고방법인 공장건설과 주택건설, 인프라건설에 매진했다. 이같은 현상은 현재 공급과잉과 유령도시 등의 부작용을 남겼다.
현재 리커창 총리 집정기에는 '해고없는 구조조정'이 '친환경발전' '산업업그레이드' '안정성장' 등과 함께 인사평가항목 최상위에 놓여있다. 여러 인사평가항목 중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것은 단연 '해고없는 구조조정'이다. 석탄 탄광을 폐쇄하고 제철소를 폐쇄하면서 해고를 억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유휴인력을 수용해낼 신산업을 육성해야 하지만, 이는 대규모 자금과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성장률저하와 부채비용으로 인해 재정이 약화된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 '해고없는 구조조정'을 성공시킨 지도자, 그것도 가장 먼저 모범사례를 만들어낸 지방정부 지도자에 스포트라이트와 높은 가산점수가 돌아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패기넘치는 젊은 지도자 루하오
'해고없는 구조조정'이라는 군침도는 먹이를 가장 먼저 물어챈 이는 패기넘치는 루하오(陸昊) 헤이룽장(黑龍江)성 성장이었다. 1967년생으로 2008년 41세의 나이에 장관급인 공청단 제1서기에 오르며, 차기지도자로 각광을 받았던 그다. 이후 2013년 헤이룽장성 성장으로 이동하며 중국 내에서 가장 젊은 성장으로 다시 한번 집중조명을 받았었다.
그는 열악한 헤이룽장성 경제를 살려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가장 큰 난제는 지역내 대형 석탄 국유기업인 룽메이(龍煤)그룹의 구조조정이었다. 룽메이그룹은 대표적인 적자 석탄기업으로 많은 탄광을 폐쇄하는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다. 지난 6일 전인대 대표단 회의에서 루 성장은 "2013년 이후 3년동안 룽메이그룹은 3만명을 감원했으며, 이들은 다른 직업으로 재배치됐다"며 "그동안 룽메이의 근로자가 단 한푼의 월급도 적게 받은 적이 없다"고 발언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헤이룽장성의 룽메이그룹은 '해고없는 구조조정'의 모범사례이며, 루하오는 공급측개혁을 실현시킨 '경제영웅'이다. 하지만 그는 1주일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된 것임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월급 한푼 깎인적이 없다"는 그의 말에 격분한 광부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기 때문.
◆광부 1만명의 대규모 거리시위
루하오의 발언이 나온 이후 헤이룽장성 솽야산(雙鴨山)시 여러 광구의 광부와 가족 1만여명은 지난 13일까지 시위를 진행했다. 광부들은 2014년부터 임금이 체납돼 현재까지 거의 반년 치 급여를 받지 못했고 매달 겨우 800위안(약 14만7000원)의 생활 보조금만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루하오가 눈 뜨고 거짓말을 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루하오 성장이 잘못된 보고를 받고, 이를 전인대에서 공개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루 성장의 실적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참모들이 과장보고를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루하오의 경력에 흠결이 생긴 모양새다.
과잉생산으로 유발된 경영난으로 인한 임금삭감, 감산과 폐쇄 등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휴직, 그리고 이로 인한 생활고가 국유기업 노동자들을 시위로 내몰고 있으며, 이는 헤이룽장성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광범위한 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때문에 '노동자시위'는 중국경제가 맞닥뜨린 최대난제이자 사회불안의 '뇌관'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노동자 시위로 몸살중
지난달 29일 장시(江西)성 핑샹(萍鄉)광업그룹의 광부 100여명은 회사1층에 모여 집단시위를 벌였다. 2월부터 일부 광산이 생산중단됐으며, 해당 광부들은 매월 470위안의 생활비만을 지급받고 있다. 이들은 "언제 조업재개가 되며, 언제 원래 월급을 받을 수 있느냐"고 거세게 항의했지만 회사측에서는 딱부러진 답을 내놓지 못했다.
현재 광산 채굴광부의 급여는 3000위안 가량이다. 감산이 단행된 광산의 채굴광부 상당수는 지상의 후방지원분야로 업무조정됐다. 후방지원근로자의 급여는 1500위안수준이다. 하지만 광산이 폐쇄되면 업무조정의 여지마저 사라진다. 회사는 이들에게 대기발령을 내고 매달 소액의 생활비만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안강롄중(鞍鋼聯眾)의 광저우(廣州) 스텐레스공장 근로자들도 시위를 단행했다. 회사는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이유로 공장 일부라인을 폐쇄했으며, 해당 근로자들의 급여를 대폭 삭감했다. 휴직중인 근로자들에게는 광저우시 최저임금의 80%만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 15일 지린(吉林)성에서 서우강퉁강(首鋼通鋼)집단공사 노동자들도 체불 임금을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곳 역시 감산이 단행됐으며, 휴직자들에게 소정의 생활비만이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산시(山西)성, 네이멍구(內蒙古) 등지에서도 노동자시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