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글로리데이’ 지수의 미스터리

2016-03-18 16:53

영화 '글로리데이'에서 정의로운 반항아 용비 역을 열연한 배우 지수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혈액형은커녕 나이도 알 수 없다. 가족관계며 학력 역시 빈칸이다. 이쯤 되면 신비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묻는 말에는 곧잘 답한다. “신비주의인 거냐”고 물으면 단박에 “아니라”고 답하는 소년은 그저 어느 틀에도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느 것에도 묶이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청춘. “관심 있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미스터리한 남자. 배우 지수의 이야기다.

3월 24일 개봉하는 영화 ‘글로리데이’(감독 최정렬·제작 ㈜보리픽쳐스·제공 필라멘트픽쳐스·배급 ㈜엣나인필름)는 스무 살 처음 여행을 떠난 네 친구의 시간이 멈춰버린 그 날을 가슴 먹먹하게 담아낸 영화다.

“사실 숨기려는 건 아니에요. 신비주의로 보이고 싶은 것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알고 싶다는 건 ‘궁금증’이잖아요? 호감이 있으니까 알아보고 싶은 거로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라면 저를 검색하고 찾아봐서 알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선입견 없이 다가가고 싶어요. 큰 정보가 없도록. 그래야 배우로서 몰입감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자세하면 또 이질감을 줄까 봐요.”

이름 때문에 “정보가 두 시간 안에는 사라진”다. 행복 지수, 코스닥 지수, 지수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여배우에게 밀리기 일쑤다. 소속사에서도 ‘이런 변수가 있구나’하고 당황했고 본인 역시 “마음 한구석으로는 씁쓸했지만” 요즘은 지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퍽 만족스럽다.

영화 '글로리데이'에서 정의로운 반항아 용비 역을 열연한 배우 지수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연기를 시작한 건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예요. 초등학교 때 유도를 시작했는데, 온종일 운동만 하니까 오히려 공부가 하고 싶은 거예요. 하하하. 그래서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알았어요. ‘아, 공부도 아니구나.’ 그러다 우연히 연기 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극단에 들어가게 됐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수십, 수백 번은 흔들렸던 청춘은 오랜 방황과 망설임 끝에 배우의 길을 찾게 되었고 날이 지날수록 성장을 거듭했다.

“저는 ‘글로리데이’를 4번 정도 봤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사실 그때가 가장 관객의 마음으로 봤었던 것 같아요. 마음도 매우 아팠고 눈물까지 났었거든요. 그다음에 두 번, 세 번 보고 나니까 점점 몰입보다는 저를 많이 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제 연기에 80% 정도 만족을 했거든요? 그런데 언론시사회 때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가장 냉정하게 봤던 것 같아요.”

문득 “창피하기까지 했던” 자신의 연기는 이미 지나온 청춘과 같았다. “연기가 너무 못 미치는 것 같아서” 최정렬 감독과 한 시간 반 동안 통화를 하기도 했다. 과거의 모습이 엉성해 보인다는 것은 즉 현재의 풍성함이기도 하다. “부족한 모습이 보인다는 건 지금, 조금이라도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지수의 말처럼 말이다.

영화 '글로리데이'에서 정의로운 반항아 용비 역을 열연한 배우 지수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영화를 보고 또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어요. ‘아, 난 지금 리즈를 갱신했구나’ 하는 점. 하하하. 영화를 보니까 너무 못생긴 거예요. 뚱뚱하고. 마음에 안 들어요. 오죽했으면 제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영화에 거슬리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니까요. 그래도 감독님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톤에는 적절하다고 해주셔서 위로가 됐어요. 마음의 안정도 얻고요. 하하.”

이번 작품에서 지수는 친구가 전부인 용비 역을 연기했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마음에 상처를 지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과 함께 의젓하게 살아가는 아이다.

“용비와 저는 비슷한 구석이 많아요. 초등학교 때 운동을 했고 남중, 남고를 나오다 보니 제 인생에는 ‘의리’라는 키워드가 깊게 박혀있거든요. 형들도 좋아하고 남자들의 우정을 비중 있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친구가 인생 전부인 용비와 비슷하죠.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줄 아는 타입인 것도 비슷하고요. 정의롭든 아니든 간에 일종의 반항을 할 수 있다는 점이요.”

극 중 흔들리는 청춘, 용비 역을 연기한 지수[사진=영화 '글로리데이' 스틸컷]


지수와 똑 닮은 용비. 이는 지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최정렬 감독 역시 한눈에 “지수와 용비가 비슷한 질감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또래 배우들에게 이슈였던 ‘글로리데이’에 주연을 맡게 된 것은 그의 말처럼 “단순한 운”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감독님이 생각하신 용비의 이미지와 저의 모습이 똑 닮았다고 마음에 드신다고 했어요. 사실 처음에 오디션을 보고 연락이 없어서 ‘내 인생의 청춘 영화는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했었거든요. 씁쓸하던 찰나에 연락을 받게 돼 너무 기뻤죠. 캐스팅 소식을 듣고 처음엔 그저 신나고 기뻤는데요. 점점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스무 살, 네 명의 청춘들에게 불어 닥친 거센 폭풍. 지수는 함께 스무 살을 연기한 배우 중 가장 어렸다. “스무 살과 가장 가까운 나이”였기 때문에 지수가 그린 용비는 조금 더 특별하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영화 '글로리데이'에서 정의로운 반항아 용비 역을 열연한 배우 지수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특별히 만들어 낼 필요가 없었던 건 분명해요. 전 어렸으니까요. 스물네 살이 그리는 것과 서른 살이 그리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겠죠? 저는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됐었으니까요.”

씩 웃는 얼굴이 청춘 그 자체였던 지수. 비밀스럽게 느껴졌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시시콜콜 떠들던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3월은 제게 특별한 달”이라고 예고하기까지 했다.

“‘글로리데이’가 24일 개봉하고, 26일에는 드라마 ‘페이지터너’가 첫 방송 해요. 그리고 30일은 제 생일이니까요. 하하하. 특별한 달이에요. 선물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