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주' 이준익, 부끄러움이 주는 선물
2016-02-19 15:15
최근 영화 ‘동주’(제작 ㈜루스이소니도스·제공 배급 메가박스㈜플러스엠) 개봉 전 아주경제와 만난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 송몽규 그리고 이들을 잊고 지낸 우리에 대한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을 전했다.
“모두가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것은 시를 투영한 자신을 좋아하는 거예요. 약간의 오류가 있는 거죠. 그를 정말 좋아한다면 삶과 죽음까지 자세히 살펴보고 느껴야 해요. 그래야만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거예요.”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강하늘 분)와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 분)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이야기다. 이준익 감독은 1940년대 일제강점기, “통째로 사라진 그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를 사랑한다면 그 시대에 대한 정보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윤동주에 관심을 두고 알아보면서 송몽규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내가 이를 모르고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극 중 정지용 시인의 말처럼 ‘부끄러운 걸 아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걸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죠. 그 말은 이 영화의 핵심이자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해요.”
이준익 감독은 되묻는다.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고 안 배우는 게 낫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운 것을 정확히 배우고 반복하지 않는 게 낫습니까?” 우물쭈물 “반복하지 않는 게 좋겠죠”라고 답하는 기자를 보며 이 감독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쉬움이 남는 건 우리나라는 ‘피해자의 하소연’만 반복한다는 거예요.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서 죽었는데 70년 동안 하소연만 하고 있죠. 왜 가해자에 대한 변별력과 가해자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가 싶어요. 독일은 군국주의 파시즘으로 유럽 전체를 짓밟았어요. 마치 일본이 아시아를 짓밟듯 말이에요. 이에 대해 유럽은 아직도 독일에 치열하게 추궁하고 면밀하게 분석하고 묻고 있어요. 하지만 매우 비슷한 상황을 겪는 우리는 대처 방법이 조금 다르죠. 가해자에 대해 지적하고 문제의식을 추궁하는 것에 소홀한 게 아닌가 싶어요.”
부끄러움을 인정하기만 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니까. 이 감독은 이것을 ‘부끄러움이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부끄러움이 주는 선물은 개선이에요. 반성해야 개선을 하지. 부끄러움이 주는 선물을 더 가치 있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1940년대, 일제의 강압과 회유책에 문인들의 절필과 변절이 심화했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은 꿋꿋하게 독립에 대한 소망과 삶에 대한 고뇌를 시에 담았고, 이 때문에 일본 유학 중 송몽규와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다. 1년 7개월 뒤인 1945년 2월 건강이 악화되어 뇌내출혈로 병사했다. 불과 광복 6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일본의 생리식염수 개발과 관련이 있다. 당시 일본군은 전시체제라 생리식염수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후쿠오카 형무소 내에서 독립운동을 한 괘씸죄로 윤동주가 실험대상으로 지목됐다. 그는 옥중 생체실험을 당했고 이는 아직 우리를 들끓게 하는 가슴 아픈 역사로 남았다.
“그 생체실험에 대해 꼭 담고 싶었어요. 윤동주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순혈한 영혼으로 알고 있는데 그가 생체실험으로 죽었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그에 대해 그리고 생체실험에 관한 내용을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사 놓는 장면이나 주사를 맞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들을 담았죠. 왜 그런 장면을 찍었느냐고 묻질 않더군요. 이에 대해 너무도 말하고 싶었는데요.”
앞선 ‘동주’ 시사회에서 이 감독은 “윤동주의 전기영화를 그리려던 게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한 편의 시 같았던 그의 삶과 죽음, 시대의 아픔을 새겨 넣고 싶었다고. 이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결정적 선택 순간만 택한 거예요. 숭실중학교의 대목을 빼버린 것이 아쉽지만…. ‘선택’이 더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봐요. 인간의 본질은 말과 생각에 있는 게 아니라 선택과 행동에 있거든요. 말과 생각은 반듯한데 결정적 순간에 선택한 것이 그릇된 행동이라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니까요.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온 국민이 사랑하는 시인”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이준익 감독은 고민과 선택, 갈등을 반복했다. 그의 “부담과 고민”은 작품 속 정갈하고 맑은 윤동주와 송몽규를 제대로 녹여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처음으로 윤동주 시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데, 제가 제대로 못 한다면 죽어라 욕을 먹지 않겠어요?”
캐스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유명한 스타들에 윤동주, 송몽규가 덮어씌워 지지 않기를 바랐”다. “70년간 청년이자 앞으로도 영원한 청년”일 윤동주, 송몽규에 대한 이준익 감독의 예의기도 했다.
“강하늘, 박정민에게 특별한 디렉션도 준 게 없어요. 그 이유는 감독은 배우를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저는 감독의 책임을 지는 거고, 연기는 배우가 책임을 지는 거예요. 서로 책임감을 부여하고 부여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진실 된 조건이거든요.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수가 없겠죠. 논리적으로 맞추다 보면 확신보다는 의심이 더 클 수밖에 없어요. ‘연기’를 들키게 된다는 거죠.”
그는 담백하게 정갈하게 윤동주, 송몽규라는 인물을 완성한 강하늘, 박정민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이들을 믿었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장면을 얻을 수 있었노라”고 말하곤 했다. 이에 “자랑하고 싶은 장면은 어떤 장면이냐”고 물었다.
“‘별 헤는 밤’ 시가 내레이션으로 나오고 카메라가 감옥에 갔다가 산수 문제를 풀려고 하는 두 사람을 잡죠. 그리고 하숙방에서 시에 대한 견해차로 말다툼을 벌이는 윤동주, 송몽규의 모습이 교차하는데 그게 정말 대단해요. 특히 굉장히 긴 대사를 쏟아내는 하늘이와 그를 보고 ‘살벌하구만’하고 받아치는 정민이의 연기는 끝내줍니다. 20대 중반은 한참 논쟁을 벌일 때잖아요. 그 순간이거든요. 청춘의 순간 말이에요. 그 장면은 다시 봐도 정말 놀랍습니다.”
영화는 곳곳에 윤동주, 송몽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깃들어있다. 그만큼 매 순간, 매 장면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차곡차곡 의도를 쌓아 올렸다. “관객들이 이 의도를 놓친다면 어떡하죠?” 설명을 듣던 기자가 묻자 이 감독은 “어쩔 수 없죠. 뭐”라며 웃어버린다.
“의도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건 옳지 않아요. 관객마다 다른 의미로 만나지는 것은 좋은 거죠. 다르다는 것은 끊임없이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보통 ‘킬링타임’이라는 말을 자주 쓰잖아요? 전 거기에 ‘세이빙타임’이라는 말과 비교하곤 해요. 이 영화는 두 시간 영화를 보고 시간을 죽이는 영화가 아녜요. 그래서 재미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송몽규, 윤동주의 마음과 존재를 되살린다면 그걸로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