辯단체들, 검찰총장·대법관 출신 개업에 회의적...일각 "밥그릇 지키기"

2016-03-17 07:00

 지난해 12월 1일 퇴임한 김진태 전 검찰총장(왼쪽)이 현 검찰총장인 김수남 당시 대검찰청 차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유선준 기자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김진태(64·사법연수원 14기) 전 검찰총장과 신영철(62·사법연수원 8기)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에 각각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두 사람의 변호사 개업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변호사단체들은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려면 법조계 고위직 출신들이 사건을 수임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변호사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발 중이다.

검찰과 법원 내부에서도 수십년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끝낸 김 전 총장과 신 전 대법관을 변호사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일각에선 변호사단체들이 업계 밥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 두사람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변호사단체들 "전관예우 관행 근절하려면 두 사람 변호사 개업 막아야"

변협은 지난해 12월 4일 퇴임한 김 전 총장에게 전관예우 악습 근절을 위해 변호사 개업 자제를 권고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변협은 김 전 총장에게 발송한 서한에서 “민주국가이자 경제선진국인 대한민국 법조계가 국민으로부터 큰 불신을 당하는 것은 뿌리 깊은 병폐인 전관예우 때문”이라며 “검찰과 법원에서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은 변호사로 개업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고액의 수임료를 받고 재직 당시 직위·친분을 이용해 후배 검사·판사에게 전화변론을 하는 등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지적했다.

변협은 이어 “개업을 하지 않아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익법인대표 등 국민을 위해 공익에 봉사하는 길은 많이 있다”며 “대법관을 퇴임한 후에도 많은 이들이 공익활동에 전념하고 있고, 새로 취임한 몇몇 대법관들 역시 퇴임 후 사익을 취하는 변호사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국회에서 선서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변협은 또 “검찰 최고위직에 있었던 김 전 총장이 변호사 개업을 한다면 검찰의 일인자였던 사람이 사익을 취하려 한다는 자체로 국민적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며 “전직 검찰총장이 형사사건을 수임해 후배들 앞에 나타난다면 후배 검사들은 사건 처리에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고 공정하게 사건 처리를 못하면 자괴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총장은 이에 대해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서울변회는 지난 8일 앞서 한차례 반려한 신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받아들일지를 다시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서을변회는 이날 오전 상임이사회를 열어 신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받아들일지 논의했지만 법무부 의견을 더 듣기 위해 결정을 유보했다고 밝혔다.

서울변회는 앞서 신 전 대법관이 1981년 변호사 등록을 한 뒤 개업을 하지 않고 판사로 계속 일했다는 이유로 개업신고서를 반려했다. 변호사법상 입회와 등록은 개업이 목적인데 신 전 대법관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변회는 신 전 대법관이 정식 입회 및 등록신청 절차를 새로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신 전 대법관은 이미 변호사등록을 마치고 서울변회에 입회한 상태인 만큼 개업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신 전 대법관은 지난 7일 "기존 변호사 등록이 적법하게 됐고 등록 취소된 사실이 없다면 다시 입회나 등록 신청을 할 필요가 없다"는 법무부의 의견서와 함께 개업신고서를 다시 제출했다.

이에 서울변회는 신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서를 받아들일지를 다시 논의했다. 이와 관련, 서울변회 관계자는 "신 전 대법관이 변호사등록을 한 후 지난해 대법관을 퇴임할 때까지 법관으로 일했을 뿐 한번도 변호사 일을 한 사실이 없다"며 "변호사 일을 하려는 것처럼 편법으로 변호사명부에 등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변호사 자격등록만 마치고 개업을 하지 않고 있던 변호사가 개업신고를 하는 경우, 지방변호사회를 거쳐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심사를 받아야 한다"며 "이와 관련한 법무부의 입장을 확인한 뒤 신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서를 반려할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퇴임한 신 전 대법관은 개업 신고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법무법인 광장에서 일할 계획이다.

◇검찰과 법원 내부에서도 두 사람의 변호사 개업에 회의적..."변호사로 안 만났으면"

검찰과 법원 일부에서도 두 사람의 변호사 개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각각 검찰과 법원의 대선배였던 두 사람이 변호사의 신분으로 후배들에게 청탁 전화를 하거나 답변서를 내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검사를 지휘했던 검찰총장이 사건을 맡아 도움을 요청하면 기분이 묘하지 않겠냐"며 "전관예우 관행을 줄이려면 고위직 간부들의 변호사 개업부터 막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수원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도 "실제로 내 직속 선배가 변호사 개업을 하고 내게 소소한 부탁을 했을 때도 부담이 컸다"며 "하물며 검찰의 총수 출신이 내게 부탁을 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부담이 더 큰 게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김 전 총장을 대선배로서 존경하지만, 사건을 놓고 다투는 법정이나 조사실에선 만나고 싶지 않다"며 "그 선배를 만나는 것 자체가 오해의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법원 내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의 큰 어른 격인 대법관이 변호사로 신분을 바꾸고 내게 답변서를 제출하거나 법정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며 "전관예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신경 쓰는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로부터 존경받던 신 선배가 변호사가 돼 전관예우를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되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다"며 "명예롭게 끝낸 공직생활에 흠이 되지 않게 변호사를 하지 않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 사천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전 총장은 검사 재직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한보그룹 비리 사건 등 대형 사건들을 수사해 특별수사 전문가로 평가받았으며, 검찰총장으로선 검찰의 부패를 척결했다는 평을 받아왔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신 전 대법관은 30여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법과 원칙에 충실한 소신 있는 판결을 해 후배 판사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할 땐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5.18 관련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낙태과정에서 아직 죽지 않은 태아를 방치하거나 약물을 주입한 의사에게 살인죄를 인정하는 등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존중하고,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도 다수다.

◇변호사단체들, 업계 밥그릇 뺏길까 봐 변호사 개업 반대?

일각에선 변호사단체들이 두 사람의 변호사 개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밥그릇 지키기로 꼽고 있다.

변호사 수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로 인해 늘어난 상황에서 전관 출신들까지 변호사 개업을 하면 기존 변호사들이 수임하는 데 있어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관 출신인 한 중견 변호사는 "나도 법원에서 나와 개업하려고 할 때 일부 변호사들이 개업을 반대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견제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변호사단체들이 이번에도 두사람의 변호사 개업을 반대하는 건 월권행위"라며 "본인들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고, 법조계 간부 출신들은 개업할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로스쿨 출신인 한 변호사는 "변협과 서울변회가 항상 편파적으로 변호사 출신을 나누는 성향이 있다"며 "로스쿨 출신들을 배척하고 사법연수원 출신들을 옹호하는 변협이 전관예우 관행을 염려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