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업대출 심사 강화에 한국기업 ‘엎친데 덮친 격’

2016-03-15 07:50
재무건전성 금융위기 수준으로 악화
현지공장 대출신용 축소 장기화우려…설비투자 등 직격탄

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미국에 치과용 장비를 수출하는 한 중소업체는 올해부터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 설립을 계획했지만 일정을 무기한 미뤘다. 미국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신용도도 나쁘지 않았고 현지 은행과 꾸준히 거래한 실적이 있었는데 대출 심사가 강화됐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이 중소기업 사장은 “몇 년 전부터 미국 수요가 늘고 있어 현지 생산공장 부지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대출심사가 강화됐다”며 “웬만한 재정건전성을 보유하지 않고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미국 은행의 대출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수출 전선이 14개월 연속 부진한 가운데 최근 미국 은행들의 기업 대출심사가 강화되면서 미국 진출을 타진하는 한국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지 생산공장 증설 등 투자를 위해 미국 은행에 대출을 하려해도 높은 심사 문턱으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14일 해외 언론과 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의 기업대출 심사는 지난해 4분기부터 2분기 연속 강화되는 추세다. 이는 가계대출 기준이 완화되고 있는 것과 차별화되는 모습이라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은행권 기업대출 심사가 강화되는 이유는 레버리지 확대와 수익 부진으로 기업 재무 건전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명목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012년 말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지난해 3분기 69.9%로 2008년 경기침체기 수준으로 근접한 것도 미국 은행들이 기업대출 심사를 강화한 이유로 꼽힌다.

기업수익은 달러화 강세 및 글로벌 성장 둔화 때문에 2014년 초부터 감소한 반면 회사채 발행은 꾸준히 늘고 있으며 그 결과 기업 수익 대비 채무상환부담은 2013년 말 저점 형성 이후 계속 증가했다.

이처럼 미국 은행들이 일제히 기업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현지화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둔 대기업들은 신용 축소 장기화가 이어질 경우 설비투자와 고용 감소로 연결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는 모습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미국 은행들의 기업대출 강화가 국내 금융권에도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권도 지난해 기업 대출에서 적잖은 손해를 봤다.

가계 대출 연체율이 줄었지만 기업 대출 연체율은 5대 은행 대부분에서 금융위기 후 최대 폭으로 올라 전체 수익에 악영향을 미쳤다. 기업 부실 여신으로 5대 은행 대손충당금 전입액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 2014년 3조4553억원에서 지난해 3조6688억원으로 6.18% 증가했다.

경남기업과 포스코플랜텍 등에 대한 부실 여신으로 신한은행 전입액은 전년 대비 29.7% 늘었다. STX조선에 발목을 잡힌 농협은행은 무려 214.3% 폭증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들이 가계에서 얻은 이익으로 기업대출로 본 손해를 만회한 셈”이라며 “가계가 은행 손실을 부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출금리 적절성 논란이 일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향후 미국 은행 기업대출 심사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용긴축 장기화를 통한 성장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신용등급이 양호한 편이지만 정부도 이같은 기업 대출심사 강화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