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산업위기] ⑬ 부산·의왕 공장 폐쇄···대대적 구조조정 통해 생존
2016-03-11 06:00
현대로템, 정책의 수혜자인가, 피해자인가? ④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001념 9월, 현대자동차그룹은 대우종합기계가 보유하고 있던 한국철도차량 지분 39.18%를 인수해 회사의 주인이 됐다.
2002년 1월에는 사명을 ‘로템(Rotem)’으로 변경했다. ‘로템’은 철도사업을 뜻하는 ‘Railroading’, 공업과 과학기술을 의미하는 ‘Technology’, 체계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System’의 합성어로 중공업 분야의 ‘턴키솔루션(Turnkey Solution)’을 제공하는 종합회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차그룹으로의 편입으로 로템, 즉 한국 철도차량산업은 3년간의 과도기에서 빠져나와 본격적인 ‘제2차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새 경영진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노조의 반대 및 과거 경영진의 무능력으로 지지부진했던 인력 및 생산시설 구조개편이었다. 400명이 넘는 인력을 줄이는 데 성공했고, 한진중공업 소유였던 부산 다대포공장(연간 생산능력 240랑)을 폐쇄했으며, 대우중공업 사업장이었던 의왕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을 30량 축소(530량에서 500량)해 전체 생산능력을 1380량에서 1100량으로 줄였다. 사업장에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TPI(Total Profit Innovation·전 부문 이익혁신) 30’운동도 실시했다. 비용은 30% 줄이고, 생산성과 이익은 30% 늘리는 경쟁력 강화 운동이다.
두 지역 공장이 우선 구조조정 대상이 된 이유는 수주 물량 배분의 비효율성 때문이었다. 한국철도차량 시절 회사는 3사의 지분율에 따라 주요 의사결정이나 생산량 배분 등을 결정하는 바람이 과다한 비용이 발생하고,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품질과 생산비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안지는 무사안일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강성인 두 공장 노동조합의 반발도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2000년 한국철도차량의 적자규모는 770억 원에 달했다.
비용 발생 요소를 제거하고, 생산과잉을 털어내자 편입 후 3개월여 만에 연간 기준 33억원(경상이익)의 흑자를 내 2년 연속 적자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2002년은 화려한 부활을 이뤄냈다. 매출액은 전년(5997억 원)보다 78%증가한 1조673억 원을, 영업이익은 801억 원으로 전년(301억원)보다 166% 늘었으며, 경상이익은 684억 원으로 전년(33억 원)에 비해 무려 20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로템으로서는 웃을 수만 없는 일이었다. 현대모비스로부터 이관 받은 방위산업과 플랜트 부문을 통해 외형을 확대한 덕분에 이뤄낸 성과였기 때문이다. 철도차량사업 부문의 성장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사업의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철도운영기관의 발주 물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철도차량 시절을 포함해 로템이 수주한 물량은 1999년 82량(국내 26량) → 2000년 273량(201량) → 2001년 786량(454량) → 2002년 428량(274량)이었다. 같은 기간 해외 물량은 56량 → 72량 → 332량 → 154량이었다. 의왕공장을 폐쇄한 뒤에도 여전히 수주량은 생산능력에 비해 절반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불안감이 흑자 경영실적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2년간 ‘깜짝 흑자’, 본질 치료 안 돼
2003년에도 650억원의 흑자를 내면서 부도라는 불안 요소는 수그러졌졌다. 흑자를 내자 독점업체의 수혜주라며 비난까지 받았다. 그러나 즐거운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3년 로템의 수주량은 227량(국내 135량), 2004년에는 531량(299량), 2005년은 592량(304량)이었다. 중장기 실적을 결정짓는 수주물량의 절대 부족 상황이 지속된 로템은 2004년 10월 전체 인원의 33%에 해당하는 관리직 500여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임금 10% 삭감, 성과급 반납, 무수익 자산 매각, 각종 경비예산 절감 등도 실시했다. 신규사업인 철도시스템사업 진출로 인한 비용 증가, 적정 수주량 확보 실패로 향후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경영악화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사실 숨겨왔던 깊은 상처를 도려내기 위한 강력한 처방이었다.
그해 530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현대차그룹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기업이라는 오명을 쓴 로템. 2005년부터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로템 살리기에 본격 나섰다. 앞서 그룹인사를 통해 경영진이 대폭 교체되면서 추가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핵심은 관리직 직원의 40% 구조조정에 이어 경기도 의왕 공장을 폐쇄하고 여기서 근무하는 생산직 직원을 생산능력을 700량으로 100량 늘린 창원공장으로 이동시키거나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전출시키기로 한 것이다. 창원공장 단일생산 체제를 통해 생산관리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고 의왕공장의 유휴설비 및 공장부지를 매각해 고정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수 개월 후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현대차그룹 구조조정 주도···의왕공장 폐쇄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가 모건스탠리의 자회사인 MSPE메트로홀딩스에 로템 보통주 1065만8367주(지분율 20.72%)를 852억6694만원에 매각하고, 매각대금 중 576억3596만원으로 로템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72만4495주를 취득했다. 또한 217억원을 들여 로템이 보유한 경기도 의왕시 토지(5886평)와 건물(862평)을 매입, 향후 전장부품 사업을 위한 연구시설 및 부지까지 확보했다. 공장 통폐합에 따라 불안해하던 의왕시 민심을 달래는 한편, 로템의 유동성을 확보해주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직장을 잃은 의왕공장 노조의 반발은 컸다. 노조는 4개월여 간 파업투쟁을 이어갔다. 2005년 9월 1일 의왕공장 직장폐쇄를 단행하는 등 최악의 상황까지 간 뒤에야 노사는 구조조정에 합의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덕분에 로템은 1년 여 만에 흑자기업으로 돌아섰다. 통합 당시에 비해 덩지(철도차량 생산능력)를 절반으로 줄여 발목을 잡았던 과잉생산체제 고민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인력이 직장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갖고 강력하게 주인이 있었기에 구조조정을 성공시켜 로템, 나아가 한국 철도차량제조산업은 생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