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바뀐 채 40년 생일 맞는 현대상선, 느슨해지는 정씨·현씨 관계

2016-03-07 10:39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사진=현대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오는 25일 창립 40주년을 맞는 현대상선이 주인이 바뀐 가운데 생일을 치를 전망이다.

특히, 21일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아산(峨山) 정주영 명예회장의 15주기 기일이며, 23일은 현대중공업 창립 44주년 기념일이다. 현대상선 태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인물과 기업의 기념행사가 공교롭게도 5일 사이에 몰려 있다.

현대상선은 과거 현대그룹 시절 아산에 의해 설립됐고, 정 씨 집안의 그늘 아래 있는 기업이지만, 정 씨 집안과 현 씨 집안이 사돈의 인연을 맺게 해준 계기가 되어준 기업이자, 정 씨 일가가 계열 분리된 후 형제간 분쟁이 일어났을 때 현 씨 집안이 주도한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다.

하지만 오는 18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등기이사 사임 및 7대 1 감자 안건 등이 통과되면, 최대주주의 자리는 채권단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현대상선은 정 씨와 현 씨 집안 모두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돼 양가 집안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현대상선의 탄생에 있어 현 씨 집안은 적잖은 기여를 했다. 금석(錦石) 현영원 신안해운 창업주는 1964년 회사를 설립한 뒤 경영을 하다가 아산과 연을 맺은 뒤 1972년 아산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착공 직후 홍콩 선주들을 설득해 2척의 유조선을 수주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사돈의 연을 맺기로 하고, 아산의 5남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금석의 차녀인 현정은 회장의 만남을 주선해 결혼시켰다.

현대중공업에 최초로 26만t급 유조선 2척을 발주했던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가 두 번째 선박 인수를 거부하자 아산은 이들 선박을 활용하기 위해 1976년 3월 25일 현대상선의 전신인 아세아상선을 설립했는데, 이 때 금석은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84년 신 정부의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로 신한해운이 1년 전 사명이 바뀐 현대상선에 통합되자, 아산은 금석을 현대상선 회장에 선임해 경영을 맡겼고, 금석은 1995년까지 대표이사 회장을 맡으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상임고문으로 물러난 뒤에도 사위 정몽헌 회장의 멘토 역할을 자처했던 금석은 2000년 왕자의 난으로 소그룹으로 전락한 현대그룹이 어려움에 처하자 2001년 현대상선 회장으로 복귀하며 사위를 측면지원 했다.

사위가 대북사업 문제로 고초를 당하다가 별세한 뒤 2003년 ‘초보 총수’였던 딸 현정은 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른 뒤에는 정 씨 일가와 현 씨 일가의 본격적인 갈등이 불거졌다. 그해 현정은 회장의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인수 시도, 2006년 시동생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 인수 시도 등이 대표적이었다. 딸과 함께 큰 시련을 이겨냈던 금석은 그해 2006년 11월 24일 별세했다.

300억원 사재출연에 이어 등기임원 사임을 결정한 현정은 회장은 현대상선 영향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가의 품에서 떨어져 나가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부재로 향후 현대그룹이 범 현대가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연결고리였던 현대증권도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라 현대그룹 내에서 아산의 창업정신, 정 씨 일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주요 계열사는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 뿐이다. 현대아산 또한 금강산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사업까지 중단되는 등 대북사업의 전면 중단으로 경영난이 더 심화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정씨와 현씨 일가를 잇게 해준 현대상선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제 현대그룹은 더 이상 정씨 오너일가로부터 ‘현대’라는 사명만 인정받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