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전통문화 외면 말라"…서울무형문화재기능보존회 공개 호소
2016-02-16 14:27
시연비 현실화, 공예관 이전 등 A4 네 장 분량 호소문 발표…서울시, 16일 부랴부랴 '무형문화재 활성화 계획' 내놔
사단법인 서울무형문화재기능보존회(회장 김복곤, 이하 보존회)는 지난 14일 이같은 내용의 공개 호소문을 발표하고, 시연비 현실화·공예관 이전·실적위주 평가 개선 등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보존회는 나무, 섬유, 금속, 칠 등 우리나라 전통공예 장인들이 직접 시연을 하고, 시민들에게 체험·교육·전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한 단체로 지난 1989년 처음 지정되었고 1997년 협회로 정식 등록되었다. 현재는 24명의 기능 보유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시의 지원으로 2005년부터 서울 종로구 북촌로 '서울무형문화재 교육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는 같은 구 율곡로에 있는 '돈화문 공예관'도 맡고 있다.
◇ 예산 삭감, 턱없이 낮은 시연비…"개인의 희생·봉사로 더는 못 버텨"
올해 서울시가 보존회에 배정한 예산(전수시설운영비)은 4억3000만 원. 이는 지난해 예산보다 1억5000만 원 줄어든 수치다. 보존회 측은 "시연의 기본 목적은 전통문화 전승과 유지에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시연의 '효과'만을 강조하며 10여 년간 해온 시연 횟수를 제한하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고 주장한다. 두 곳의 공예관이 외진 곳에 있어 시민들이 많이 찾아올 수 없음에도 시에서는 '사람이 없다', '작품 판매가 저조하다', '재정자립도를 높일 방안을 강구하라' 등 실적 위주의 잣대를 들이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규리 서울시 역사문화재정책팀장은 "지난 해에 비해 올해 보존회 예산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이는 시의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의회에서 의결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2014년에도 올해와 같은 4억3000만 원이 배정됐었던 것"이라며 "올해부터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활발한 전수 교육을 벌일 수 있도록 '전수교육경비'를 10% 상향했다"고 말했다. 조례에 따라 해당 기관·단체에 지원하는 전수교육경비는 지난해까지 월 120만 원이었다.
◇ 열악한 무형문화재 공예관…풍문여고 매입부지 활용 논란
보존회가 운영하는 서울무형문화재 교육전시장, 돈화문 공예관은 방문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일반인들에게는 대개 좋은 평가를 받는 곳들이다. 특히 지하1층·지상5층으로 지어진 돈화문 공예관은 전시실, 시연실, 세미나실, 옥상 한옥까지 갖추고 있어 다양한 전통공예 체험을 하려는 나들이객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직접 공예 전수와 시연을 하는 기능 보유자들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김 회장은 "두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협소한 공간에서 마음놓고 제대로 된 전통공예를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다"며 "기능 보유자들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 대하는 일부 관람객들과 시 관계자들에게 모멸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또 "이럴 바엔 차라리 각자의 공방에서 제약 없이 전승 활동을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가 지난 해 5월 매입하기로 결정한 서울 풍문여고 부지(토지 1만3839㎡와 건물 1만1251㎡) 활용 방안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서울시는 2013년 10월 '공예도시 서울' 조성을 위해 현대공예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공예문화박물관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원래 서울시는 공릉동 서울북부지청 부지에 박물관을 지으려고 했지만, 면적이 좁고 교통 사정도 좋지 않아 결국 지난 해 안국동 풍문여고 자리로 계획을 바꿨다. 서울시는 공예박물관 건립으로 경복궁-북촌-인사동-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문화벨트를 조성하고 이를 관광자원화 한다는 방침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는 곳에 현대공예 중심의 건물이 들어선다니 아이로니컬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 자리가 현대공예 쪽 협회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곳이기 때문에, 보존회의 요구(공예관 이전)는 현대공예가 해놓은 일을 빼앗는 격이라고 힐난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전통공예 기능 보유자들이 안정적이고 편안한 곳에서 전수 활동을 하길 바라는 것뿐인데, 시에서는 마치 우리가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시가 우리를 외면하고 등한시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풍문여고 부지를 현대공예 위주의 박물관으로 꾸민다는 계획을 세울 당시, 보존회를 포함한 전통문화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거나 공청회 등 협의 과정을 거쳤을까? 김 회장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지자체가 어떤 계획을 세울 때마다 매번 이해당사자들, 관련 전문가들과 논의를 할 필요성과 의무는 없다. 하지만 지역의 역사적·지리적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공예문화박물관 건립에 대한 전통문화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 서울시, 뒤늦게 '무형문화재 활성화 계획' 발표
서울시는 16일 '서울시 무형문화재 활성화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무형문화재 발굴 다양화·원형 보존·전승기반 강화, 기능 보유자 영상 기록화(다큐멘터리 제작) 등이 그 골자다. 특히 전승 단절이 우려되는 80대 이상 보유자와 명예보유자 등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기록화 사업을 실시한다.
이 밖에도 서울시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 서울 사람의 삶에 대해 종합조사·연구하는 '서울민속종합조사'에 착수하고, 현재 보유자가 없는 종목이나 명예보유자만 있는 종목에 보유자를 지정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에는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서울시 무형문화축제'도 개최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산업의 문화화' '문화의 산업화'를 슬로건으로 제시했다.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문체부는 이를 '산업에 문화의 옷을 입혀 경쟁력과 부가가치를 높이고, 문화를 산업화해 국내외 문화수요를 창출하는 글로벌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뜻으로 알렸다.
다른 문화 정책들은 차치하더라도 서울시는 그 동안 전통문화 유지·전승 부문에 있어서 '문화의 산업화' 측면에만 방점을 찍어온 것은 아닐까.
한 전통공예 원로는 서울시에 대한 보존회의 공개 호소에 이같이 말했다.
"나이 들고 힘 없는 예술가들을 시에서 지원해주니까 고맙지. 그런데 예술가들 마음이 편해야 문화가 살아. 문화가 살아야 지원해준 자기네들 체면도 설 테고. 돈을 적게 줘도 사람을 진심으로 위하면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