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강욱순 프로골퍼·사업가 “프로골퍼로서 가장 보람있는 일 하고 있어요”
2016-02-11 00:00
경기 안산에 복합 스포츠 시설 건설중...선수·일반인·공단 사람들에게 요람 되기를 바라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아카데미 포함
경기 안산에 복합체육시설 건설 중
삼성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역발상’
공단옆에 스포츠 테마파크 짓게 해
선수·일반인에겐 ‘원스톱 골프’ 場
공단 사람들에겐 편한 휴식처 제공”
우리 운동 선수들은 ‘인생 제2막’을 꾸리는 일이 쉽지 않다. 선수 시절 대부분 학업은 등한시하고 운동에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적 풍토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미국·일본과 판이해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프로 골퍼들도 큰 차이가 없다. 국내 프로골퍼 가운데 선수 생활을 마치고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김미현·오은미·김승학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선수생활을 화려하게 보낸 강욱순(50)이 사업가로 변신을 꾀해 주목받고 있다. 강욱순은 8년전부터 구상해온 복합체육시설 건설 사업을 지난해 10월 착공했다.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다.
강욱순은 경기 안산 초지동 일대 7만7000여㎡(약 2만3000여평)에 ‘안산스포츠파크’를 짓고 있다. 이 곳에는 클럽하우스를 비롯해 골프연습장, 9홀짜리 피칭&퍼팅 코스, 어프로치샷 연습시설, 수영장, 피트니스장 등이 들어선다. 대규모 체육시설이다.
안산스포츠파크는 안산시 소유 땅에 민간사업자가 투자해 시설을 지은 후 시에 기부하고 15년간 관리운영권을 갖는다.
강욱순은 ‘강욱순스포츠’라는 법인 대표로 사업권을 땄다. 안산스포츠파크의 지분 90%를 강욱순스포츠가 출자했고, 강욱순은 강욱순스포츠의 지분 51%를 보유한 1대주주다.
시화호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굴삭기 소리가 요란한 안산 현장 사무소에서 강욱순을 만나 사업을 시작한 동기부터 물었다.
“90년대말 내가 이름을 날릴 때 한 미국 기자가 질문을 하더라고요. ‘미국에 소개하고싶은 한국의 골프 교육시스템이 있느냐?’고요.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보니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좀 했지요. 나중에 후배들에게도 뭔가 남겨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2003년말 미국에 가서 미국PGA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Q스쿨)에 응시할 때에도 이 꿈을 잊지 않았어요. 당시 70일정도 머무르면서 미국 골프아카데미를 두루 답사했습니다. 한국과 달리 다양하고 특화됐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마음을 정했습니다. 한국에도 원스톱으로 골프를 할 수있는 아카데미를 만들어야겠다고 말이지요. 안산스포츠파크는 기술(연습)·보디(피트니스)·멘탈리티·음식·휴식을 일관하는 골프아카데미가 될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가게 되면 누구나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생소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겠다. 프로골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강욱순도 그랬을까.
“처음에 아내가 반대했지요. 어렵사리 골프를 해서 성공적인 프로골퍼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느냐는 얘기였어요. 그러나 내 결심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후배들이 나보다 나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확고했지요. 2003년 미PGA투어 Q스쿨에서 1타차로 낙방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나보고 한국에 그럴듯한 골프아카데미를 세우라는 암시였던 것같아요. 이 사업은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강욱순은 프로골퍼 가운데 ‘행운아’축에 든다. 삼성그룹에서 일찍이 그를 눈여겨보고 안양컨트리클럽에서 훈련할 수 있게끔 지원했다.
그와 삼성의 인연은 16년이나 지속됐다. 그 덕분에 강욱순은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고위층 인사들과도 접촉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갈 때 동행하기도 했다.
강욱순은 그 때 삼성 최고경영자들의 생각과 일거일동을 어깨너머로 봤다. 언젠가 자신도 사업가가 될 때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안산 반월공단 근처에 복합체육시설을 짓기로 한 것도 삼성에서 배운 역발상의 결과였다.
“이 근처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공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공단에 무슨 체육시설이냐?’고 말할 지 모르지만, 나는 달리 생각합니다. 공단에 근무하는 경영인이나 근로자야말로 휴식을 잘 해야 일도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안양CC에 근무할 때 삼성 임직원들을 보니 주중 열심히 일한 후 주말에는 코스에서 휴식을 하고 스트레스를 날리더라고요. 일과 휴식을 확실히 구분하는 그들의 자세에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이 스포츠파크는 선수들이나 일반 시민들에게도 개방하지만, 인근 공단에 근무하는 분들에게도 휴식처가 될 것입니다.”
그는 후배 골퍼들에게 “프로골퍼는 기업 총수들과 만날 기회가 많다. 만날 때 그냥 스쳐지나가지 말고 그들의 비즈니스 마인드 등을 곁눈질로라도 배워두라. 그러면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골프강국이 됐다. 강욱순이 보는 그 원인은 이랬다.
“사회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매사에 경쟁이 치열하지 않습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먼저 타려고 하고, 차를 운전할 때에도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질서를 어기면서까지 이리저리 앞서갈 궁리를 하고…. 남보다 못하면 곧 뒤떨어지기 때문에 남들에게 안지려는 승부욕이 일상화됐다고 봅니다. 그 덕분에 골프선수들도 골프에 필수적인 멘탈리티가 강하고 이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데 밑받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욱순은 “오는 8월 리우올림픽에서도 한국 여자골프는 무조건 메달을 딴다. 리디가 고만 제치면 금·은·동을 휩쓸 가능성도 있다. 한국 남자골프는 기량면에서 처지지만, 세계 톱랭커들이 올림픽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군복무가 면제된다는 변수를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스코어를 줄이는데 관심이 많다. 성공한 프로골퍼로서, 한국을 대표하게 될 골프아카데미를 짓는 입장에서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해줄 조언을 부탁했다.
“골프는 원운동입니다. 일관된 원을 그리기 위해서는 축이 중요합니다. 초등학교 때 콤파스로 원을 그리는 동작을 연상하면 됩니다. 오른손잡이 골퍼의 경우 스윙 축은 왼다리입니다. 골프는 축을 위주로 원을 그려야 하는데, 대부분 아마추어들은 원을 위주로 한 후 축을 잡습니다. 골프 스윙을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축을 지렛대삼아 스윙하려면 제대로 된 연습장에서 이를 체득하고 필드에 나서야 합니다. 또 골프는 일상생활과는 반대의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입니다. 이를테면 일상에서는 당기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골프에서는 밀어줘야 하는 동작이 많지요. 일상생활에서 쓰는 근육으로 볼을 치면 몸이 망가지게 돼있어요. 요컨대 골프의 기본, 골프에 필요한 근육 등의 원리를 제대로 배워야 골프를 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초보자들은 스크린골프 대신 연습장에 많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초보자들보다 오히려 중상급 골퍼들이 연습장에 많이 오더라고요. 이는 거꾸로 된 것입니다. ”
◆프로골퍼 강욱순은
부드러운 스윙으로 기복없는 샷을 구사하는 강욱순은 한국프로골프(KPGA)에 굵직한 자취를 남겼다. 1999년과 2002년 KPGA투어 상금왕을 차지했고 통산 12승을 올렸다. 무엇보다 빛나는 기록은 1999∼2002년 최소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덕춘상’을 4년연속 받은 것이다. 그것도 모두 60타대 스코어였다. 이는 KPGA투어에서 전인미답의 업적이다. 강욱순은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아시안투어에서 두 차례(1996,1998년)나 상금왕에 올랐다. 아시안투어 승수는 6승이다.
강욱순은 2003년 미국PGA투어를 노크했다. 퀄리파잉토너먼트 최종전 마지막 홀에서 파만 잡아도 그는 최경주(SK텔레콤)에 이어 한국선수로는 둘째로 미PGA투어에 진출할 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홀에서 30cm거리의 파퍼트가 홀을 외면했다. 그 1타 때문에 미PGA투어에 진출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강욱순은 지금도 “미국 투어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내 골프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라고 말한다. 강욱순은 그러나 국내에 돌아와서도 꾸준한 성적을 냈다. 만 43세이던 2009년 토마토저축은행오픈에서 우승했다. 시니어투어에 진출하기 직전인 2015년까지도 KPGA투어 대회에 출전, 후배들과 기량을 겨뤄왔다. 그는 “올해는 시니어투어 출전 자격이 생기지만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몇몇 대회에만 나설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홀인원을 통산 일곱차례 했다. 18홀 베스트스코어는 공식 대회에서 9언더파 63타이고, 비공식 대회에서는 11언더파까지 쳐봤다. 그는 안산스포츠파크를 짓게 된 것이 골프인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건설 현장이 보고싶어 아침 5시30분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출근할 때 들리는 굴삭기 소리가 음악소리처럼, 자신의 꿈이 이뤄지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강욱순의 평생 꿈인 안산스포츠파크는 올해말 완공 예정이다.